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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Feb 09. 2022

단순함의 미학

가벼운 마음으로 월요일을 맞는다. 거래처와 함께 시작하는  9시. 언제나 그렇듯이 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책상에 앉는다. 설 연휴 휴식의 관성이 이제야 진정된 느낌이다.


언젠가부터 명절 연휴가 다가오면 보이지 않는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마음의 게으름이지만 자신의 역할은 해야만 했다. 의무이기 전에 도리였기에 성묘를 하고 친지와 안부 나누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

     

이번 설 명절도 시골에서 아침 성묘를 마치고 어머니를 모시고 광주로 돌아왔다. 오후엔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가방을 정리하는 아들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가족 모두 명절 러시아워를 뚫고 서울로 향했다. 딸아이 원룸에 들러 사는 것을 살펴보고, 저녁엔 누나와 여동생이 사는 잠실로 향했다. 어머니는 누나와 여동생 집에서 2월을 보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하루 더 쉬고 가라는 여동생의 권유를 뒤로하고 아내와 함께 광주로 돌아왔다. 여행지가 아닌 타인의 거주 환경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는 성격 탓이다.      


독신인 여동생은 심플한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고 있다. 나름대로 소박한 살림살이지만 내 눈에는 이 조차도 번거롭다. 안방 크기에 비해 협소한 거실은 소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식탁에는 커피포트를 비롯해 각종 컵과 인스턴트 건강식품이 나열되어 있고, 작은 책상의 대부분은 PC와 키보드가 차지하고 있다.      


나는 어느 집을 가든 앉을 책상이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책상 위에는 가재도구나 옷가지도 없어야 한다. 책상에 앉으면 언제든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대화자를 곁에 두고 나 홀로 책상에 앉는 경우는 드물다. 대화가 끝나고 파장 분위기가 될 때 책상을 찾는다. TV로 시선 처리를 하듯이 잠시 책상에 앉아 마음을 정돈하기 위해서다.     


고급가구보다 이케아 가구가 나의 취향이다.


건설사 전산실에 근무할 때, 모델하우스로 외근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옷가지와 가재도구 없는 간결한 모델하우스 공간에서 텅 빈 충만을 얻었다. 가능하다면 실생활도 그렇게 꾸미고 싶다는 상상까지도 했다. 하지만 옷가지와 가재도구 없이 어떻게 실생활이 가능하겠는가. 결국은 미니멀리즘이었다.      


나의 라이프 스타일은 단순함을 추구한다. 사는 것 먹는 것 모두가 편식에 가깝다. 삶의 철학도 ‘가늘고 길게’가 나에겐 매력적이다. 최근 들어 ‘길게’ 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지만 말이다.     


대표적으로 음식에 투자하는 시간을 줄이고 있다. 나는 편식을 해서 그렇지 밥맛이 없어 밥을 못 먹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손님이 왔을 때는 반찬이 푸짐하지만, 평소의 반찬은 김치와 국 그리고 그날의 별식 한 가지가 전부이다. 별식이라 해보았자 계란말이, 김구이, 제육볶음, 버섯볶음, 두부무침, 오이무침 정도에서 한 가지 선택해 반복적으로 먹는다. 말 그대로 초딩 입맛에 쥐코밥상이다.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는 나를 위해서인지 아내 또한 생선요리를 즐겨하지 않는다. 어머니와 아들이 왔을 때야 가끔 생선 요리를 하는 편이다. 아내와 단 둘이 지낼 때에는 하루 두 끼 식사와 설거지까지 30분도 소요되지 않는다.     


‘저녁 먹는다’를 영어로 표현할 때 원어민은 eat dinner가 아닌 have dinner로 표현한다. have의 의미에는 ‘drink+eat’가 함축된 의미 이상으로 담소를 나누는 분위기까지 담고 있다. 식도락에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have dinner가 아닌 eat dinner인 셈이다.     


가재도구는 최소한 줄이고 산다. 유행하는 신제품에도 관심이 없는 편이다.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 중에 액자형 캘린더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가 많다. 분명 공휴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빨간색 날짜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아직도 2018년 캘린더를 사용해서이다. 시작 요일이 같은 월을 현재의 월로 가려서 사용해서인데,  윤달이나 마지막 30일로 끝나는 달에는 일자까지 가려서 사용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나와 아내가 사용하는 데 불편이 없기에 매년 은행에 가서 새로운 캘린더를 구하려고 애쓰지 않아서이다.     



우리 집 방문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2018년도 캘린더.


미니멀리즘의 장점은 시간 절약이다. 절약된 시간에 주로 문화와 예술을 즐긴다. 딜레탕트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점도 있다. 결코 나 혼자 이기적으로 고고하게 살려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주변인에게 은근한 부담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항시 염두에 두는 말이 있다. ‘삶이란, 더불어 혼자 사는 것’이라는 박경리 작가의 아포리즘에서 '더불어' 라는 단어이다.     


설 연휴도 지났고 다시금 반복된 일상의 시작이다. 잠시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한다. 사진 갤러리 넘기며 눈과 머리를 정화한다. 고요하다. 언젠가 보았던 새벽안개에 잠긴 한계령처럼.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일상에세이 Archives - 딜레탕트 오디세이ajebe.co.kr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양희은 - "한계령"' 듣기 -

https://youtu.be/RLevdLXYW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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