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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Apr 02. 2022

주말의 커피 타임

Take a coffee break.

평온한 주말 아침이다. 어제 산책길에 사 온 원두를 갈아 끓는 물을 부어 드립을 한다. 황금빛과 갈색빛이 어우러진 크레마가 살아 움직이듯이 작은 원의 거품을 만들어 낸다. 고개를 숙여 크레마가 내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소녀 시절의 딸아이와 친구들이 까르르까르르 웃어대는 것만 같다.     


왜 이리 커피 향은 고소할까. 역치와는 상관없는 듯한 커피 향의 비결이 뭘까를 새삼 궁금해하며 커피 잔을 들고 소파에 앉는다.  아내가 읽고 있는 정기구독 잡지가 눈에 띈다. 클립을 끼워 둔 챕터가 궁금해 펼쳐보니 특집 <소풍>이다. 지난달 제주 보름 살기를 다녀온 아내 이건만 다시 제주 이야기에 책갈피를 한 것을 보니 좋은 추억이었나 보다.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하던 커피가 어느덧 머그컵의 바닥이 보인다. 리필을 아니할 수 없다. 충만한 마음을 좀 더 갖고 싶어서다. 다시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작년 9월 하순부터 시작한 프로그램 업그레이드 작업이 3월과 함께 1차 완료되었다. 정중동의 6개월이었다. 이제는 어떤 일을 해도 기본 시급 정도의 분량이지만 아직 IT 개발자의 제도권에 머물며 할 일이 있다는 안도감으로 안분지족의 마음을 견지한다.     


오늘은 2022년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가 시작되는 날이다. 나의 동안거가 해제되는 날이기도 하다. 올해는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의 라인업이 기대해 볼만한 전력을 갖췄다. 하지만 세계 최강의 선수로 구성된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가 항시 우승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승을 목표로 그 순간에 열광하고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sportsmanship,  swag 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선수는 sportsmanship을 잊어서는 안 되고, 관중은 swag의 정도를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사 극우 극좌는 일반 정서에 반한다. 훌리건이나 바그네리안의 느낌을 보더라도 말이다.


리필했던 커피마저 바닥을 보인다.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에서의 저자 스콧은 커피가 남아 있다고 해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지나치게 커피의 향기와 맛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로울 만큼만 커피를 마시며 커피 마시는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스콧의 말처럼 덕이 있게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따뜻한 잔을 손으로 감싸 들고, 생생한 원두 향내를 맡으며, 따스한 커피 한 모금에 입안 가득 진하게 번지는 향미를 맛보는 ‘좋은 삶’을 즐기는 것이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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