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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Feb 19. 2022

그리운 꿈속의 아버지

평일에는 야삼경이 지나면 수면에 들지만 주말에는 새벽까지 나 홀로 밤을 즐긴다. 시골이라면 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리는 시각이다. 새벽까지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선 초저녁 잠을 자 두어야 한다. 오늘도 저녁 산책을 다녀와 소파에 누워 잠시 토막잠에 빠져 들었는데 그리운 얼굴이 보였다. 반가움과 먹먹함이 교차하는 얼굴이었는데 20여 년 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북망산으로 떠난지도 40여 년이 흘렀다. 돌아가시고 얼마간은 투병을 했던 핼쑥한 얼굴로 가끔씩 나타나던 아버지가 언젠가부터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내 나이가 생전의 아버지보다 많은 세월이 흘렀기에 이대로 잊히나 싶었는데 오늘 꿈에 나타난 것이다.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이름 모를 강을 지나 어느 잔칫집 마당에 들어서니 아버지가 보였다. 음식을 씹은 채로 대문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얼굴 표정은 예전과는 다르게 핼쑥하지는 않았지만 그리 밝은 표정도 아니었다. 아, '아버지~' 하며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서려는 찰나, 잠이 깨는 바람에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말았다. 너무 아쉬웠다.      


비록 꿈속이지만 오랜만에 만났던 아버지였기에 그리움이 사무쳐 소파에 앉은 채 한참 동안 아버지를 생각했다. 냉수 한 잔을 마시려다 갑자기 해몽이 궁금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꿈 풀이에는 긍정보다는 부정의 기운이 느껴졌다. 경고 또는 어떤 일이 생길 기미라는 것이다. 올해 98세가 된 노모를 모시고 있기에 어머니 건강을 염려하던 중에 문득 형님 생각이 났다.     




2남 5녀의 장남인 형님과 나는 10살이 넘는 터울이다. 따라서 한 번도 형이라 불러본 적이 없고 어려서부터 깍듯이 형님이라고 불렀다. 형님 나이도 이제는 칠십을 넘었다. 1남 2녀를 둔 형님은 20여 년 전 외아들을 잃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취준 생활 중에 하늘나라로 간 것인데, 그때부터 형님은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나는 참척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형님을 이해하면서도 은둔에 대해서는 이해를 못 하겠다. 이제는 20여 년의 세월도 흘렀고 남은 가족을 위해 아픔을 딛고 서는 장남의 모습을 보고 싶은 데 말이다.     


형님과는 아버지 기일에나 한 번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전화 또한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나누고 주로 형수와 출가한 조카에게만 안부를 나누는 편인데, 지난달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잔뜩 술에 취한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형님의 과거사 투정은 뫼비우스 띠처럼 반복되기에 수화기는 들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왜 형님의 전화는 항시 술에 취해있을까. 짜증이 났다.      


목공이었던 아버지는 시골에서 건축공사 사업을 했다. 아버지는 서른이 넘어 술을 배운 애주가였다. 아무래도 노무자들과의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술이었으리라. 결국 늦술에 취한 아버지는 간경화로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다.     


나도 술을 좋아한다. 애주가라면 애주가이다. 대신 가족이나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는 분위기에서 즐겁게 마시는 주도를 항시 생각하며 마신다.


조지훈 시인의 주도유단(酒徒有段)이 있다. 술은 격조와 풍류가 있어야만 한다며 만든 주도인데 나는 10단의 애주(愛酒) 정도의 레벨로 생각한다. 아버지의 경우는 18단인 폐주(廢酒) 레벨인 셈인데 형님도 18단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예감이 든다. 그 예감이 불안으로 여겨져 나도 모르게 형님에게 짜증을 냈던 것 같다.


꿈속 아버지의 예지(豫知)는 무엇이었을까. 형님과 가족의 건강을 염원해 본다.   

  


  ▶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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