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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Apr 30. 2022

넥타이와 정장

아파트로 이사온지가 20년이 훌쩍 넘었다. 옆집 주인도 다섯 번이 바뀌었고 5년마다 새로이 페인트칠을 하는 아파트 외벽도 올해  번째로 바뀌었다. 상가에 입주한 가게는 수없이 주인이 바뀌었아예 문을 닫은 가게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아파트 분양 초창기 모습 그대로 쉬지 않고 영업을 하는 곳이 있다. 슈퍼와 세탁소이다.


두 가게는 명절을 제외하고 내 기억으로는 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 휴일에도 문을 열고 영업하는 그들의 일상을 보노라면 안타깝기도 했지만,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투자하는 듯한 부지런한 그들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기도 했다.    


옷가지를 한 아름 안고 세탁소에 간다던 아내가 나갈 때 모습 그대로 옷을 안고 돌아왔다. 세탁소 문이 닫혔다는 말에, 60대인 그들도 이제는  휴일을 챙기며 쉬엄쉬엄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다시 세탁소에 드라이클리닝을 맡기 온 아내의 얼굴이 심각했다. 세탁소 사장이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사나흘이 지났다. 휴일 아침 느긋이 늦잠을 자고 산책을 나서다 세탁소에 붙은 안내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상중(喪中)이었다. 마른 한숨과 함께 망자의 명복을 빌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세탁소 사장과는 같은 아파트 주민으로서의 관계 외에 특별히 개인적 친목을 도모하지는 않았다. 세탁소나 아파트 단지에서 마주치면 그저 눈인사만 나눌 정도의 거리였다. 그러나 세탁소 부부의 모습은 줄곳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 그들의 근면함과 부지런함이 좋아서 말이다.


10여 년 전에는 세탁소 사장의 부지런한 모습을 보고 수필을 쓴 적도 있었다. 그 수필이 나에게는 유일한 문학상 수상의 경력을 갖게 해 준 글이기도 다. 언젠간 서로가 현업에서 은퇴하여 동네 이웃으로 술집에서 만나게 되면, 그때의 수상작을  보여주며 감사의 술 한잔 쏠려던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허무하기 그지없다. '生은 유한하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르네상스의 詩人이자 인문학자인 페트라르카의 탄식이 생각날 뿐이다. 다시 한번 망자의 명복을 빌며 그때 수상했던 글을 올려본다.



- 제4회 시흥문학제 수필부문 -


넥타이와 정장                               

                                                                                       - 김 영 배 -

 비 갠 날의 아침 햇살은 언제나 상쾌하다. 풀잎에 맺힌 새벽이슬을 마시는 듯한 해맑음이다. 콧노래가 흥얼거려진다. 맞은편 세탁소 주인도 넥타이 차림으로 책상다리를 한 채 유유자적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 모습을 보자 유머 한토막이 생각나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남자의 한가운데 붙어서 달려가면 털레털레 흔들리는 게 뭘까?' 정답은 '넥타이'라고 한다.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아파트 상가의 세탁소 주인은 언제나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한 정장 차림이다. 다리미의 체열이 있기에 간편한 복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는 그렇지가 않다. 처음에는 어색함으로 보였지만 그 모습이 눈에 익으면서 세탁소 주인의 정장 차림이 다정함으로 여겨졌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탁소 앞을 지나칠 때 나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버릇과 함께 빙그레 미소를 짓는 여유까지 생겼다.


 나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을 좋아한다. 아무리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넥타이를 풀고 일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술좌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어쩌면 직업의식에서 굳어진 습관 인지도 모른다.


 나의 첫 직장은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작은 백화점이었다. 백화점은 서비스 정신에 따라 전 직원이 정장을 하게 되어있다. 나는 전산실 근무였지만 매장 근무자와 똑같은 정장 차림으로 근무를 했다. 처음으로 넥타이를 매고 일을 하는 어색함에 몇 번이나 매듭을 만지고 거울을 들여다보던 신입 생활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넥타이를 하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한 때는 넥타이를 맨다는 자체에 강한 불만을 가진 적이 있었다. 맞선을 보는 장소에서였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맞선이란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까지 연애는커녕 미팅 한 번 해보지 못한 상태였기에 낯선 여성과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무척 힘이 드는 일이었다. 경직된 상태에서 유독 나 혼자만 넥타이를 매고 정장 차림을 한다는 게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번의 맞선에 실패하면서부터 나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선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타이 차림으로 맞선을 보기도 하였는데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실패의 원인 중 하나는 맞선 장소에서의 정장은 기본 예의인데 노타이였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다시 넥타이를 매고 선을 보았다.


 어느 정치인이 노타이 차림이라고 국회의원선서를 못하게 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나 또한 넥타이를 매지 않아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했던 적이 있었다. 아내와 결혼 날짜를 정하고 나서 처가 친척들과의 첫 모임이 있었다. 장소는 처형이 사는 대전으로 정하였고 다음날은 계룡산으로 등산이 계획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산까지 올라가려면 양복보다는 편한 차림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캐주얼 복장으로 모임 장소에 나갔다. 그런데 모두들 양복과 한복 등 정장을 입고 나타난 것이 아닌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지금도 나는 정장을 즐긴다. 그 이유는 캐주얼보다는 정장을 하면 상대방이 내 나이를 한 살이라도 더 보아줄 것 같아서다. 그것은 내가 동안(童顔)이라는 핸디캡이 있어서이다. 사실, 비즈니스를 할 때 상대방이 나에게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실제 나이보다 한참을 아래로 판단해 반말투로 말을 꺼냈다가 내 나이를 알고 나서 미안해하는 상황을 자주 경험해서이다.


 정장은 착용하는 시간을 줄일 수가 있어서 좋다. 캐주얼의 경우는 상하의 조화를 위해 어떻게 입을까를 망설이게 되지만, 정장을 할 때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만 매면 되기에 착용 과정이 간단해서다. 또한 정장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가 있어서 좋다. 약간의 긴장감은 정신집중을 좋게 하고 일의 효율을 올릴 수 있다. 평소 장난기가 많고 공상이 많은 나로서는 캐주얼 복장에서 일을 하면 왠지 집중도가 떨어지고 자세가 흐트러질 때가 많다. 이런 흐트러짐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넥타이가 은연중에 만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을 더욱 좋아한다.


 어쩌면 세탁소 주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일까?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고 하루 종일 일과 숙식을 같은 장소에서 하다 보면 자칫 빠지기 쉬운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정장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세탁소 주인의 모습이 유달리 다정하고 여유롭게 보인다. - 시흥문학제 우수상 -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나는 4회에 응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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