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요제 <약속>
원주역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남도가 고향인 나로서는 멀고 먼 낯선 고장이다. 캔커피의 온기를 느끼며 하늘과 맞닿은 먼 산을 바라본다. 아련한 상념들이 뭉개 뭉개 피어오르지만 나의 시선은 이내 철로로 향한다. 철로를 보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대학가요제 입상곡인 전남대 대표의 곡 <약속>이다.
아직 기차는 오지 않고 커피는 식어간다. 조용히 이어폰을 꽂는다. <약속>의 전주가 흐른다. 비올라의 가을바람소리를 느끼게 하는 멜로디가 아주 애절하다. 저승에 갇힌 에우리데케를 찾아가며 산천초목과 짐승들을 감동시켰다는 오르페우스의 리라의 소리가 이러했을까? 철학과 여학생이라 그런가? 여성 보컬의 목소리도 형이상학적이라는 선입견이 든다.
운명처럼 뻗은 레일? 결코 만날 수 없는 실근이 아니 허근의 운명? 그런데도 우연히 부딪는 사람은 과연, 운명이라 할 수 있겠다. '공간 가득히 허무가 흐른다'는 노랫말이 생각에 잠기게 한다.
어느 하늘 밑 잡초 무성한 언덕이어도 좋아
어느 하늘 밑 억세게 횡량한 벌판이어도 좋아
......
운명처럼 뻗은 레일 위를 걷다가
우연히 부딪는 그런 사람이면 좋아...
대학가요제 은상 <약속>
초등학교 5학년으로 기억한다. 페이퍼북으로 된 잡학 상식류의 퀴즈 책을 보니 ‘허무 중에 가장 큰 허무는 무엇인가?’라는 퀴즈가 있었다. 이게 왜 퀴즈였는지 모르겠지만 정답은 ‘인생’이었다. 뭔지 모르는 인생이라는 단어가 어린 마음에도 거창하게 여겨졌다. 언젠간 누군가에게 퀴즈를 내려고 기억을 했다.
그 무렵 큰 누나에게 작업하러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들던 해양경찰이 있었다. 쉽게 맞추지 못할 거라고 단정하며 퀴즈를 냈다. 나의 질문을 마치자마자 그의 입에서는 즉시 대답이 나왔다. ‘인생이지!’라고 망설임 없이 정답을 맞히는 것을 보고 어른이 되면 모두가 인생을 알게 되는 것으로 짐작했다. (그 해양경찰은 나의 정답은 맞추었지만 누나에게 기대했던 작업은 실패했다)
나에게 허무는 인생 보다도 기대하는 마음이다. 타인에게 기대를 하고 사랑에 기대 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에 앞서 ‘희망 속의 허무’라고 생각한다. 기대가 무너졌을 때의 허탈감이 허무함으로 여겨져서이다. 사람이 희망이라는 말이 클리셰로 들리는 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인데, 이런 나의 느낌이야말로 허무가 아닌지 모르겠다.
광주로 돌아와 유튜브에서 당시 대학가요제에서 부른 <약속>의 영상을 찾았다. 내가 고딩일 때의 영상인데 화장기 없는 여성 보컬의 얼굴과 남성 보컬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청춘의 갬성이다. 이제는 그들도 60대 후반이 되었을 것 같아 지금의 모습이 궁금했다.
요즘도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유튜브 채널이 있었다. 아마도 부부가 되었는지 거실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었다. 당시로는 용기를 내어 염색을 했을 것 같은 남성 보컬은 소년 같은 모습에서 중년을 거쳐 이제 장년이 된 모습을 보니 뭔가 찡했다. 그들의 노랫말처럼 ‘공간 가득히 허무’가 흐르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여기서 느끼는 허무란 늙음 보다는 세월의 허무다. 그렇지만 그들은 시간이라는 공간의 허무를 노래로 지우고 사는 듯 보였다.
언뜻언뜻 한 번쯤 느끼게 되는 인생의 허무. 허무 중의 허무가 과연 인생일까? 세상사 모든 게 언젠간 한 줌의 흙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는 허무하지 않을 수 없는 인생이다. 허무 때문에 삶의 끈을 놓을 때도 있지만 허무로 인해 갈등을 줄이고 삶을 위로할 수도 있다. 허무는 욕망과 갈등을 내려놓으려는 의지를 천명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허무는 삶의 동반자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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