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제베 Sep 12. 2022

B급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생활 좌파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생활 좌파란, 구호나 정치적 이념이 아닌 자유를 추구하는 생활의 한 방식이라고 한다. 이들은 세상의 대세나 유행에서 벗어나 익숙한 것과 자본에도 저항한다. 대형마트에 가지 않고 베스트셀러와 TV를 멀리한다. 기본 생계만을 위한 활동 외에는 오직  문화 예술만을 음미하는 생활을 추구한다. 즉, 불편함을 감수하며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가지는 것인데 요즘 나의 삶의 방식이 되어 간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몇 개월 전이었던 2019년 가을. 애초에 담배를 배우지도 않았던 나는 건강검진에서 폐의 임파선에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서둘러 입원을 하고 부랴부랴 조직검사를 받았다. 조직검사 결과가 폐렴으로 판명될 때까지의 며칠간 나는 시한부 인생을 경험했다.      


퇴원 후, 간호사였던 아내의 특별 관리 속에 의사의 처방전대로 항생제 복용이 시작되었다. 이때 고향의 일부 친구들은 나의 유고(有故)를 걱정했다. 폐렴이 폐암으로, 항생제 치료가 항암제 치료로 와전된 해프닝 때문이었다.      


이 무렵 초등학교 은사님께 전화가 걸려 왔다. 해외지사에서 근무하는 딸의 가족이 일시 귀국했다며 시골집 가는 길에 한 번 들르라는 전화였다. 그때 은사님의 따님은 브런치를 통해 막 알게 된 작가였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아내의 신신당부 속에 약봉투를 가방에 넣고 은사님 댁을 찾았다.      


가을 오후의 햇살이 설핏 기울어가는 은사님의 시골집 현관은 비어 있었다. 법정 스님이 기거했던 불일암을 처음 찾았을 때 느꼈던 침묵의 분위기였다. 은사님을 기다리는 동안 현관 옆 텃밭에 서서 고흥군의 간척지인 해창만(海倉灣)을 바라보았다.      


해창만 간척지 사업은 내가 태어난 60년대에 시작한 시골의 숙원사업이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 결혼할 무렵에서야 완공된 기나 긴 사업이었다. 바다를 메워 한 평의 농토라도 늘려 식량증산에 따른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한 몸부림의 세월이었다. 나에게도 이 세월은 신분상승을 위한 몸부림의 시간이었고 나를 조급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날 은사님은 읍내 군청의 행사에서 색소폰 연주를 하느라 늦었다고 했다. 농사를 짓고 농장을 가꾸는 은사님은 고희가 훨씬 지난 연세임에도 틈틈이 색소폰 연주 활동뿐만이 아니라 동영상 편집 공부까지 하고 계셨다. 사회적 목적을 갖고 하는 배움이 아닌 심미주의에 심취한 은사님의 분위기가 나의 사회적 욕망을 돌아보게 했다. 그해 가을은 이래저래 나의 가치관과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하는 계절이 되었다.     


올해 들어 가장 공감하는 도올의 모습이다.


B급 시민으로 산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요즘처럼 평온했던 적은 없다. 혼놀 혼술의 즐거움과 책 읽는 즐거움을 조용히 누리고 산다. 국민연금을 조기 수령하고 있기에 최저 시급 정도의 IT 프로그래밍을 하며 생활한다. 도시의 자연인이 된 느낌이다. 바람이 있다면 해외여행이 어서 자유로워지길 바라는데, 종종 편치 않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평온한 삶의 방식이 나와 가족들에게는 어떤 미래와 행복을 가져다줄까. 나 혼자만의 행복일까?라는 불편함인데 나에게는 화두인 셈이다.     


월급 타서 쌀 사고, 연탄사고, 전기료 내면 행복의 포만감에 젖었던 시절. 전혜린의 제부였던 영화감독 하길종은 선술집에 가면 모든 인간의 고뇌가 자신의 것인 양 “우리에게는 항시 앙가주망이 문제야!”라고 외쳤다고 한다. 마치 B급 시민인 나에게 하는 말 같아 가끔씩 움찔하게도 한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음악과 망각에 취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