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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Sep 24. 2022

오늘 같은 밤이면

박정운의 명복을 빌며

포털의 뉴스피드에 낯익은 가수의 이름이 보였다. 반가움에 앞서 암연한 마음을 갖게 하는 박정운의 부고 기사였다. 박정운은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아니다. 아내가 좋아했던 가수였기에 잠시 그 시절을 회상하며 망자의 명복을 빌었다.     


퇴근 한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박정운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는 부고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박정운이 누구냐고 반문한다.      


“한때 팬이었으면서 누군지 몰라?”

“???”

“나에게 박정운 음악 CD 선물한 것도 기억 않나?”

“???”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아내의 표정이다. 순간,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신혼의 추억팔이도 흐려져 간다는 현실이 지극히 서글프다. 엊그제 결혼한 것 같았던 우리였는데.          



엊그제 만났는데 벌써 흰머리 중년이...



나의 시골 친구들은 20대에 거의 결혼을 마쳤다. 하지만 나는 서른 중반이 될 때까지 비혼주의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비록 맞선 상대였지만 어둠 속에서도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큰다는 그 사랑이.     


결혼 약속까지 했지만 그녀와 데이트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다. 3교대 근무하는 간호사였기에 병원 복도의 커피 자판기 앞 데이트가 많았다. 모처럼 스케줄이 맞을 때에는 야외보다 시내에서 주로 데이트를 했다.

   

광주의 명동인 충장로에 있는 레스토랑에 그녀와 함께 앉았다. 대학생 알바인 듯한 청바지 차림의 여학생 두 명이 라이브 무대에 오른다. 감미로운 어쿠스틱 기타 전주가 흐르고 멋진 하모니가 흐른다.      


“아침이 오는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

내 품 안에 잠든 너에게

우우우우~ 너를 사랑해~"     


인터넷이 없던 시절 도쿄에서 4년 가까운 공백이 있었기에 처음 듣는 음악이다. 가슴 뭉클함이 느껴지는데 이런 느낌을 나는 '생명의 고동'이라 표현한다. 조용하고 다소곳이 앉아있던 그녀에게 묻는다.  


"이 노래 아세요?"

"박정운의 노래예요."     


이 노래를 배워 서툰 기타지만 라이브로 그녀에게 들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며칠 후, 음악사에 들러 박정운의 그 노래를 찾았지만 나의 눈에는 보이질 않았다. 음악사 주인이 찾아준 CD를 보는 순간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박정운이 아닌 한동준의 <너를 사랑해> 였던 것이다. 얼마나 박정운을 생각했으면......     



아내는 박정운을, 나는 한동준을 좋아했다


결혼 후, 4년 만에 IMF가 찾아왔다. 가족을 남겨두고 나 홀로 다시 도쿄로 직장을 옮겼다. 얼마 후 국제소포가 기숙사에 도착했다. 아내가 보낸 소포였는데 거기엔 박정운의 음악 CD가 들어 있었다.     


한동준을 박정운으로 순간 착각할 정도로 기-승-전-박정운이었고, 유일하게 박정운 CD를 국제소포까지 보냈던 아내가 이제는 박정운을 희미하게 기억을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아쉽다. 아내에게 지난날의 감성을 지켜주지 못한 나의 미안함 때문이다. 나의 허당끼가 아내의 갬성마저 무디게 했으니 이러 저래 서글픈 날이다. 아내와 함께 박정운의 명복을 빈다. 2022.9.17


아제베의 음악이야기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출현하기 전에는 나도 대중가요를 좋아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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