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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Dec 09. 2022

혼놀의 평온함 - 샤워

내가 깊은 생각에 잠기는 때는 언제인가.


커피 마실 때?

맥주 마실 때?

일기를 쓸 때?

잠자리에 들 때?     


아니다, 달리기를 할 때 가장 많은 생각을 한다. 다음으로 많이 생각하는 순간은 짧은 시간이지만 샤워할 때이다. 샤워 줄기를 뒤집어쓴 채 느끼게 되는 찰나의 영감이 나에게는 특별한 사유의 순간이 된다. 억눌린 피로와 스트레스가 풀려서일까 창의력이 샘솟는다. 특히 프로그래밍 중에 막혔던 장애가 이 짧은 시간에 생긴 아이디어로 많은 해결을 했다.          


나에게 혼놀의 시작은 역시 아침 샤워이다. 따뜻한 물에 시원스레 샤워를 하고 상쾌한 스킨을 바르고 커피를 끓인다. 커피 향이 거실을 그윽하게 한다. 단기적이고 역동적인 도파민의 행복보다는 소확행의 세로토닌의 여유로움이 온몸에 퍼진다. 혼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고요 속의 평온함이다.     



1989년 일본으로 직장을 옮겼다. 습관의 변화가 생겼다. 가장 눈에 띄게 생긴 습관은 아침과 저녁에 하게 되는 샤워였다. 당시 서울에서 첫 직장 다닐 때의 월세방에는 샤워실이 없었다. 주말이면  동네 목욕탕에 가는 것이 전부였는데, 기숙사의 세면장에서는 언제든지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몸의 청결뿐 만이 아니라 마음의 청결까지도 씻어주는 샤워가 일상의 즐거움이 되었다.      


샤워의 행복함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어느 광부의 모습이었다. 열악한 환경의 막장에서 일을 하는 젊은 광부에서 행복을 물었다. 그는 자신이 번 돈으로 고향의 동생들이 공부할 수 있다는 뿌듯함과 하루 일과가 끝나고 샤워를 마친 후의 개운함을 이야기했다. 그리고선 1회용 비누와 타월을 들고 샤워장으로 향하는 행복한  표정에 크게 공감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샤워를 좋아하는 이유는 수시로 할 수 있다는 간편함이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만 하면 뭔가 빠진 듯한 찝찝한 마음이 든다. 머리를 감을 때는 물에 옷깃이 젖어 살갗에 닿는 꿉꿉함이 싫다. 이럴 바에야 전신 샤워가 마음의 망설임을 날려 버릴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다. 더욱이 짧은 머리의 남자이기에.       


샤워는 좋아하지만 사우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사우나를 하면 오히려 힘이 더 빠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인데 목욕탕에 들어가 몸을 담그는 것 또한 샤워에 비해 선호하지 않는다.       


결혼 전에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내 키에 비해 평균 체중이었지만 좀 더 체중을 불려 ‘남자라면 70Kg’이 목표였다. 목욕탕에서 흘리는 땀의 양이 대체적으로 500ml 정도라고 한다. 좀체 늘지 않는 체중을 생각하면 사우나에서 흘려 나가는 땀의 무게도 아까웠다. 나잇살이 붙어 뱃살을 걱정하는 지금에 와서는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만.     


여행을 할 때도 샤워장이 갖춰지지 않는 곳으로는 떠나기가 망설여진다. 몽골의 초원이나 동남아 오지의 생활상이 궁금해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는 이유이다. 따라서 여행지를 찾을 때는 작더라도 독립적인 샤워장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캠핑장에 갈 때도 마찬가지인데 요즘의 캠핑장은 샤워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가 있다.        


이토록 즐기는 샤워지만 주변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하기에 물의 과소비가 아닌가 하는 자기 검열이다. 우리 집의 관리비 명세를 보면 전기료보다 수도료가 더 많이 나온다. 겨울에는 온수를 사용한 까닭에 같은 세대의 이웃보다 가스비 또한 많이 나오는 편이다. 물의 과소비는 맞지만 기꺼이 수도료에 투자한다는 신념으로 마음의 부담을 떨친다.


요즘 물 부족 뉴스에 마음이 무겁다. 이곳 광주도 내년 3월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제1 식수원인 동복수원지가 바닥을 드러낼 거라 한다. 나로서는 기우제를 지내는 심정으로 누구보다 애타게 비를 기다리고 있다. 어서 비가 내려 저수지를 가득 채운 물이 내 가슴까지 넘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과 작은방이 있고
뜨거운 온수에 샤워를 할 수 있는 지금이
더없이 평온하다.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비야 비야 밤새 내리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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