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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Dec 20. 2022

혼놀의 평온함 - 생산적 활동

혼놀의 진심은 심심하다고 남을 귀찮게 하지 않는 것이다. 혼놀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사람에겐 일이 있어야 한다. 스님이 운력(울력)을 하듯이 은퇴를 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생산적 활동에는 노동을 해서 돈을 버는 경우나, 운동을 통해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경우나, 여행이나 취미생활을 통해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는 IT 개발자로서 최저생계비 정도의 노동과 취미 생활을 영위한다. 조기 수령하고 있는 국민연금 덕분인데 소비에 맞춘 노동에서 소득에 맞춘 제한적 활동을 한다. 혼놀이기에 가능한 생활이기도 하고.


취미 생활에는 예술을 음미하는 것이다. 문학과 음악 그리고 그림 전시를 즐긴다. 특히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포에버 소울메이트이다. 자뻑을 가미하여 표현한다면 혼놀을 즐기기엔 ‘신의 한 수’ 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나온 자취를 되돌아보니
책 읽는 즐거움이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싶다.

- 법정 스님 -
법정 스님의 친필 <길상사>


나이 들수록 공자의 명언이 실감이 나는 요즘이다. 대표적으로 마음에 와닿는 명언은 두 가지다. 배움의 즐거움을 이야기한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주1]와 사랑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애지(愛之) 욕기생(欲其生)[주2]이다.          


가을의 서릿발 같았다는 맹자에 비해 봄날의 따스함이 풍겼다는 공자. 덩치 큰 공자의 매력이 이제야 나에게  뿜뿜의 활력이 되고 있다. 대표적 꼰대라고 생각했던 공자가 말이다.      


배움의 호기심은 혼놀을 보다 알차게 채울 수 있다. 나의 경우는 영어회화이다. 학창 시절 수학과 물리는 재미있었지만 영어는 아무리 노력해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한 마디로 영포자였다. 이런 영어가 요즘은 반갑다. 그때는 싫었지만 지금은 좋다.      


코로나는 인류에게 여러 재앙을 안기고 있다. 두 번째 서른을 맞이하고 여행길이 막힐 때는 억울하기도 했다. 억울한 마음을 달래고자 유튜브를 통해 왕초보 영어를 독학했다. 중고등학교 6년 간 분명히 배웠을 내용이었겠지만 지금의 기억으로는 처음 알게 된 기초문법이 너무 많았다. 관계대명사의 활용을 이해하고 나니 긴 문장의 공포감이 사라졌다.      


기초 문법을 쌓으니 시너지 효과로 영어회화에도 공포감이 사라졌다. 물론 왕초보 회화 수준이다. 그러나 외국어는 외국어다. 손으로 천천히 써가는 영작에는 약간의 자신감을 얻었지만 히어링은 아직 젬병이다. 1.5배속 2배속으로 아무리 느리게 틀어도 연음과 플랩 발음이 좀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었기에 현지 히어링 실습을 핑계로 런던 여행을 계획했다. 얼마 후, 질병관리청에서 안내 문자가 도착했다. 2가 백신 4차 예약 안내 문자였다. 잡초 못지않게 질긴 전염병에 또다시 실습 여행을 망설이게 한다. 아무래도 내년 봄까지는 유튜브에서 히어링을 좀 더 독학해야 할 것 같다. 어차피 독학도 혼놀이 아니겠는가.


[주1]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 배우고 익힌다면 즐겁지 아니 한가.

[주2] 애지 욕기생(愛之 欲其生) -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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