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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Dec 18. 2022

혼놀의 평온함 - 독고다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나란 무엇인가”라는 에세이에서 인간의 기본단위를 개인에서 분인(分人)으로 세분화했다. 개인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바꾼다면 individual인데, 부정 접두사 in을 떼어버린 dividual(나누다)을 분인의 의미로 표현했다. 직역하면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뜻이 되는데, 나의 해석은 맥락과는 다르게 ‘독고다이’의 의미로 여겨진다.     


혼놀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독고다이의 놀이이다. 타인이 내 본질을 규정하고 나를 왜소화 시킬 수 있는 개연성은 많다. 하지만 독고다이의 길은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에 방점을 찍는 것이기에 타인의 시선에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나도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겠소’라는 거창한 다짐이 자기 검열을 완화하기 때문이다.      


요즘 혼놀, 혼술을 자주 이야기한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에게는 바람직한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야말로 멋진 세상이라고 여겼던 내가, 언제 처음 혼놀,혼술을 이야기했던가. 과거의 메모를 찾아보니 2016년 11월 19일로 기록되어 있다. 그날 정희진 작가의 ‘나이 듦 수업’을 읽었던 모양이다.     





'나이 듦 수업'의 요지는 나이가 들수록 자기 몰두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자기 세계가 있는 인간은 외롭지도 않고 남을 괴롭히지도 않는다. 또한 자기의 어떤 세계를 추구할 때는 결코 나쁜 것을 추구하지 않기에 자기 몰두형 인간은 이기적인 것과는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6년 전에 나는 혼놀을 반기지 않았다. 혼자 할 용기가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확신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은 혼놀을 즐기고 있다. 계기라면 계기는 있었다. 배경은 코로나 시국이었다.


예전이라면 비난을 면치 못할 표어와는 다르게, ‘뭉치면 죽고 헤어지면 산다’라는 생각에서 공유 사무실에서 재택근무로 작업 환경을 바꿨다. 일의 집중력이 저하될까 염려는 했지만 의외로 작업효율이 좋았다. IT 개발자의 장점이기도 했다. 답답하지도 않았고 외롭지도 않았다. 나에게 집돌이 취향이.


나의 장난기와 농담이 이제는 친구들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상황이 나를 쓰라린 자학에 빠지게 한 계기도 있었다. 농담이라는 표현도 나의 기준에서 농담이지, 몇몇 친구들의 입장에서는 비아냥이 되어 버린 농담이었을 것이다. 시종일관 덕담만을 이야기하면 영혼도 없고 진짜가 없는 느낌에 부연한 농담성 한 마디가 팩폭이 되었던 것이다. 까일 수밖에.


최근엔 초기 치매 증상을 보이는 모친을 케어하느라 자연스럽게 외부활동을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세계가 있는 사람은 남을 괴롭히지도 않는다’라는 문장이 서럽게 느껴지는 나날들이다. 마음의 고립이.


만사가 싫은 것은 아니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것도 탈이라고 하기에 오지랖을 줄이고 있다. 타인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독고다이 분위기가 오늘도 나의 혼놀을 응원한다. 누군가가 이야기했듯이 작은 슬픔에 말이 많고, 작은 고독에 몸짓이 커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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