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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Mar 05. 2023

혼놀의 평온함 - 은둔

시골집에서 나 홀로 주말을 보내고 있다. 4일째다. 당초 계획은 일요일 저녁에 광주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이곳에서 며칠 더 지낼 생각이다. 침묵 속으로 혼놀의 평온함을 즐기기 위해서인데 혼놀 보다는 마치 은둔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프로야구 마니아인 나로서는 매년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가 끝나면 동안거에 들어갔다.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았다는 詩人 김영랑의 심정처럼, 나 또한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면 나의 한 해도 다 가고 말았다는 심정으로 한 해를 조기 마감했다.     


특히 프랜차이스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을 때는 패자의 하냥 섭섭한 마음으로 다음 해 오픈을 기다리면서 스스로를 위리안치시킨다는 마음으로 동안거에 들어갔다. 수도승의 동안거야 수도의 길이지만, 나의 동안거는 프랜차이스팀의 패배를 저주하고 희석시키려는 소극적 한풀이 은둔이었다.         


은둔이라는 것이 때로는 그럴싸한 행복감을 줄 때도 있다. 동안거에 들어가면 삶의 흥미를 잃은 줄 알았던 내 마음이 왠지 여유로워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외출을 삼가니 가족과의 시간도 많아지고 나의 취향을 즐길 시간도 많아졌다. 모임을 싫어하기에 연말연시의 번거로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원치 않는 송년모임에 동안거라는 닭살 돋는 핑계로 불만의 민원을 해소했다. 나 혼자만의 이기적 해소긴 했지만 말이다.     



이름난 예술인 중에 생각나는 은둔자가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D샐린저나 지휘자가 사랑한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은둔의 대명사이다. 이들은 극도로 제한된 활동 외에는 평소에는 은둔 속에 살다 외딴곳에서 아무도 모른 채 죽음에 이르기까지 했다.     

이들을 제외하고도 소리 없이 은둔했던 예술인 중에는 악마의 바이얼리스트 파가니니, 현대철학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핀란드의 작곡가 시벨리우스, 우리나라 대중가수 중에는 몇 해 전 타계한 제비꽃의 조동진이 생각난다. 헤밍웨이도 한때 가난하지만 낭만이 있는 나라인 쿠바에서 20년 가까이 은둔생활을 했다.


이들의 은둔은 자신의 예술을 자뻑으로 즐기는 사람들이다. 타인을 향한 자뻑은 겸양지덕에 어긋날 수도 있지만, 자신을 향한 자뻑은 스스로를 사랑하게 하는 순간으로 되는 것이다. 즉, 예술의 즐거움을 자신의 소소한 행복으로 즐기는 홀가분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도 그렇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클리셰를 차치하고서라도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세상살이다. 최소한의 생계와 사회적 책임은 삶의 가치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삶의 방향은 모두 같을 수 없고 목표 달성만이 전부가 아니기에 때로는 무리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자신의 은둔으로 가족에게 염려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말이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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