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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Mar 09. 2023

혼놀의 평온함 - 혼밥(1)

시골집에서 광주집으로 복귀하는 날이다. 틈틈이 다듬은 프로그램을 거래처 서버에 업데이트하기 위해서이다. 최저시급 정도의 노동과 혼놀과 혼술 그리고 혼밥을 즐긴 일주일이었다. 냉장고에 남은 반찬을 정리하여 찌개를 끓이고 이른 점심을 먹으며 혼밥을 생각한다.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의 읍내를 일주일간 두 번 다녀왔다.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서였는데 재래시장이 아닌 농협마트에서 쇼핑을 하였다. 잘 다듬어진 채소와 밀키트는 삼시 세 끼를 해결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나는 미식가가 아니어서인지 식도락에 관심이 적은 편이다. 초딩 입맛인 나의 삼시 세 끼는 시장기만 느끼지 않을 정도의 식사면 충분하다. 언젠가부터는 모닝커피로 아침을 대신하고 점심, 저녁 두 끼만 먹는다. 가끔은 식당에서 혼밥도 하는 데 눈치를 보거나 쑥스러워하지 않는다. 다만 식당의 러시아워를 피하는 눈치는 본다.     


https://brunch.co.kr/@erre-kim/225     


전여옥은 ‘일본은 없다’라는 산문집에서 일본의 중년을 보고 일본의 미래가 없다고 했었다. 어스름 퇴근길에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가방을 낀 채 한 손으로 만화를 들여다보며 혼밥, 혼술하는 모습에서 느낀 생각이었다. 한때 일본 직장 생활을 할 때 나 또한 혼밥, 혼술을 자주 했었기에 일상으로 여겨지는 모습이었다.


사람의 관계란, 서로의 허물도 덮어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서로와 어울리지 않고 혼밥, 혼술하는 모습에서 情이 약해 보이는 일본의 개인주의를 염려했던  시선이었으리라.




우리 주변에서도 혼밥, 혼술의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개인주의가 팽배해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미래가 없는 것인가?


몇 년 전 파리여행을 처음 다녀와서 개인주의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농경시대가 아닌 산업사회에서의 세상은 ‘개인취향의 분위기’로 사회의 패러다임은 바뀌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현대 사회는 경제발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의 고집과 집념이 만든 문화나 덕후가 만든 사회문화도 존재한다. 즉, 개인의 다양성이 이룩한 사회문화인 것이다. 공동생활에서는 이루기 힘든 다양성이다.


이제는 농경시대처럼 대가족 분위기의 情을 함께 나누며 살기에는 힘든 세상이 되었다. 스스로의 노동으로 생계와 삶의 가치를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인데 사회가 단순하지 않다. 월급 받아 쌀사고 연탄사고 수도,전기세 내면 한 달 가계가 움직였던 시절이 아니다. 편리한 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정보를 스스로가 익혀야 한다. 가족 이전에 1차적으로 본인 스스로 해야 할 일과 정보가 넘친다. 시간에 쫓기는 자신의 모습에서 ‘자연인’ TV프로에 대리만족을 느끼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혼놀.혼밥.혼술을 긍정적 의미로 여기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문화가 대세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더불어 혼자 사는 삶’에서 필요한 것은 타인을 향한 개인의 공중도덕과  예절이라고 생각한다. 붐비는 식사시간 대의 작은 식당에서 혼밥을 자제한다거나, 테이블이 적은 카페에서 장시간 일을 자제한다는 것. 이것은 개인주의의 마지막 희망의 보루라고 할 수 있겠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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