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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May 13. 2023

혼놀의 평온함 - 멍때리기

어버이날을 전후해서 아들과 딸이 차례로 광주를 다녀갔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술을 전혀 못하는 아내와는 달리 두 아이들은 술을 적당히 좋아한다. 어찌 보면 나에게 술을 배운 제자이기도 하는데 맛집과 술집을 찾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떠나고 맞이하는 주말. 외식과 과음의 피로가 느껴졌기에 휴식이 필요한 주말이다. 이번 주는 ‘따로 또 같이’의 분위기로 각자의 주말을 보낸다. 아이들은 일터에서, 집밥 먹이느라 애를 쓴 아내는 광주에서, 나는 시골집에서 보낸다. 아이들은 도회지의 자유를, 아내는 <자기만의 방>에서의 평온함을, 나는 시골집에서 혼놀의 평온함을 즐길 것이다. 토요일에는 비가 내린다고 하니 더욱 기다려지는 주말이기도 하다.      


얼마 전, 시골집 마당에 있는 작은 꽃밭에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야외등을 설치했었다. 어둠을 밝히는 용도보다는 갬성을 밝히는 용도로 설치했는데, 오늘 밤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불빛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음악을 들으며 글이 쓰고 싶어지는 갬성이 물씬 풍기는 목가적 밤의 풍경이다. 조용히 캔맥주를 들이켠다.



몇 년 전 상영했던 프레디 머큐리의 영화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한 가지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음악에 오페라를 가미하려 하였다. 대표적 오페라인 비제의 ‘카르멘’이었다. 카르멘의 1막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일해야 돈을 받지, 놀면 돈을 받나?”      


실존의 자아는 신선한 노동에서 찾아야 한다는 건 팩트이다. 휴식을 위해 떠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던 일을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틈새의 휴식과 놀이를 요령껏 찾는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도 과유불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로운 영혼은 자칫 권태에 빼지기 쉽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축제가 열리는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데이지의 권태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은, 내일은, 그다음은......      


혼놀의 힘은 이때 발휘하는 거다. 남을 귀찮게 하지 않고 스스로가 즐기는 휴식과 놀이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모처럼 갖는 혼놀에도 잡스러운 생각이 불현듯 찾아와 마음을 어지럽힐 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회한(悔恨)이고 한편으로는 비현실적 상상이다.  캔버스에 젯소를 바르듯이 멍때리기를 시작한다.      


멍때리기에도 분위기가 필요하다. 머릿속 시선처리를 위해 마음의 수채화를 그린다.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감상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말이다.


평소에 부르는 노래는 대중가요이지만 감상은 클래식을 찾는다. 있는 듯 없는 듯 흐르는 멜로디라고 해서 붙여진 가구음악이 좋다. 오늘 밤에는 대표적 가구음악인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를 감상하고 싶다. 에릭사티는 참으로 빈한한 삶 속의 고독한 예술가로 살다 갔다. “나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왔다."는 사티의 일성이 귓가에 맴돌면 시나브로 나의 고독이 위로가 된다.          


유튜브 <짐노페디> 에릭 사티

https://youtu.be/Lq9mIkLa8Fc          


그림에서는 우끼요에(浮世繪)풍을 상상한다. 이는 원근법과 입체감을 배제한 그림의 한 종류지만, “떠다니는 세상”이라는 의미의 불교용어이기도 하다. 즉, '덧없는 세상'이라는 것인데, 일본 정원을 본떠 만든 모네의 수련연못이나, 고흐가 모사한 우끼요에 풍의 그림을 감상하며 덧없는 풍경의 분위기를 상상하는 것이다.          



영화 <안경>을 떠올리는 것도 나에게는 분위기 몰입 방법의 하나이다. 티저 영상을 보거나 스틸 사진을 보며 멍때리기 분위기를 상상한다. <안경>은 태평양과 인접한 일본 규슈의 최남단인 요론 섬이 배경인 영화다. 오키나와 문화권이지만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섬이다. 이 섬에 발을 들여놓으면 사색에 잠기게 된다는 스토리가 몰입의 배경이 된다. 자연스레 멍때리기 분위기에 젖어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해마다 멍때리기 대회가 열린다. 현대인의 지친 마음을 쉬게 하려는 의도이다. 뇌에게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게 하는 휴식에서 뇌의 효율이 좋아진다고 한다. 마음이 바쁠 때나 무얼 해도 재미가 없을 때에는 멍때리기에 빠지는 것도 좋을 듯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막연한 두려움을 휴식으로 맞이할 수 있으니 말이다. 멍때리기도 혼놀의 평온함을 갖게 한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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