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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May 09. 2019

나의 장난기는 아무도 못 말려

두 친구를 생각하며

오후 3시. 그리움의 시간이며 집중력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다. 하던 업무를 멈추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유한의 여유를 즐긴다. 그래도 집중력이 생기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장난기가 서서히 발동한다. 회사 직원 또는 거래처 직원에게 메신저로 농담을 하기도 하고 전화로 상대방을 놀려주기도 한다. 그렇게 웃다 보면 체내에 엔돌핀이 솟아나서인지 일을 하는 데 지루함을 잊고 정신을 다시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장난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장난으로 인해 가끔은 남에게 피해를 줄 때도 있다. 나의 철없는 장난으로 피해를 준 생각을 하노라면 두 친구가 떠오른다.


죽마고우 중에 나의 장난과 이기심을 잘도 받아 주었던 친구가 있다. 대학시절 처음으로 테니스를 배울 때였다. 새벽마다 함께 운동을 하던 친구가 아무 연락도 없이 테니스코트에 나오질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운동이 끝나고 친구 자취방엘 갔더니 방문은 열려 있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장난기가 발동하였다. 의자와 물품으로 피라미드처럼 쌓아놓고 꼭대기에 물주전자까지 아슬아슬하게 올려놓았다. 그리고선 "네놈이 아침 운동을 나오지 않아 열 받았다"라는 농담성 쪽지를 물주전자 주둥이에 꽂아 놓고 친구 방을 나왔다.

 

아침 장난을 잊고 있던 나는 저녁 식사 후 산책 삼아 친구 집에 들렀다. 친구는 웬일인지 초저녁부터 술을 마시고 잠이 들어 있었다. 이후 친구는 나를 보면 침묵으로 일관했는데 그동안 친구에게서 느껴보지 못했던 뜻밖의 모습이었다. 며칠간 그 영문을 몰라 안타까워하다가 또 다른 친구를 통해 그 이유를 전해 듣게 되었다.


내가 장난으로 쌓아놓은 피라미드의 물주전자가 시간이 지나 방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나 보다. 주전자에 들어있는 물과 엽차 찌꺼기가 온 방을 적시고 어지럽혀져 졌다. 그날 친구는 다른 친구 집에서 자느라 새벽 운동을 못 나왔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온 친구는 어지럽혀진 방안의 광경을 보고 화가 치밀었고, 오히려 "열 받았다"는 나의 쪽지까지 있었기에 내가 일부러 방안을 어지럽혀 놓았다고 오해를 했던 것이다. 그런 연유로 친구는 초저녁부터 술을 마시고 나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즉시 친구를 찾아가 오해라고 사과를 했지만 한동안 서먹서먹한 관계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화해를 하기는 했지만 하마터면 소중한 우정을 잃을 뻔한 장난이었다.


또 한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였는데 점심시간 때의 일이었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맛있게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한 친구가 갑자기 고개를 숙여 도시락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뭔가를 찾는 것 같더니 머리카락을 하나 집어 올린다. 길이로 보아 하숙집 아주머니의 머리카락으로 짐작되었다. 친구는 머리카락 언저리 밥까지 쓰레기통에 버리고서는 아무 일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고 친구가 교실 밖으로 나간 사이, 나는 또 장난기가 발동했다. "아주머니, 도시락에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어요. 앞으로 머리를 잘 빗고 도시락을 싸주세요"라는 종이쪽지를 친구의 빈 도시락에 넣었다. 그리고선 이 장난을 잊고 하교를 했다.

 

저녁을 먹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문을 열어보니 뜻밖에 친구가 두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노려보고 있지 않는가. 순간적으로 도시락 쪽지 장난이 떠올랐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일은 저질러져 버린 상태였기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전전긍긍해했다.

 

영문도 모르는 그 쪽지 때문에 하숙집 아주머니와 얼굴을 붉힌 친구는 나의 장난이었음이 확인되자 흥분된 목소리로 한참 동안 나를 몰아치기 시작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 하고 친구를 돌려보냈다. 그 후로 친구와는 서먹서먹해지기 시작했고 그런 상태에서 졸업과 함께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출장지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잊고 지냈던 도시락 장난의 피해자인 그 친구였다.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는 도시락 쪽지 사건이 떠올랐다. 그 친구도 곧바로 도시락 쪽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전화상으로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다시 한번 그때는 미안했다고 사과를 하고선 '넌 참 기억도 좋다'라는 칭찬의 말로 대화를 바꾸어야만 했다.


나의 장난기는 학창 시절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사회인이 되어서도 농담과 장난은 여전하다. 낯선 환경에서 어느 정도 얼굴이 익혀지면 분위기를 해치거나 기본 에티켓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나도 모르게 장난을 치게 된다. 장난을 친다는 건, 서로에 대한 긴장감을 줄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윤활유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다만, 상대방이 나를 가볍게 판단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기는 하지만.  

  

살아가는 데 권위는 필요하다. 하지만 권위주의는 내려놓아야 할 대상이다. 빈틈없고 실수 없이 사는 사람보다 약간의 실수와 장난기를 가진 사람이 좋다. 서로 장난을 부릴 수도 있고 장난을 받아넘길 줄 아는 넉넉한 여유가 나는 좋은 것이다.


참, 농담과 장난에도 눈치는 있어야 한다. 아픈 사람에게, 분위기 띄우려는 선의의 농담도 때로는 서운함이 될 수 있기에.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김영배 수필집 -마이너리그에도 커피 향은 흐른다- 에서 재편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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