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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Jul 30. 2023

성하의 계절에 떠오르는 소설

박민규 -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

무더운 여름이면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이다. 그간의 SNS를 검색하였더니 두 건의 메모가 남겨져 있다. 2013년과 2016년의 여름이었다. 열대야를 잊고 라벨의 음악을 들으며 독서 삼매경에 빠졌던 모양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댄디보이 라벨이 만든 협주곡의 제목과 같은 동명 소설이다. 여름이면 이 소설을 떠오르게 하는 건 역시 생맥주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가 인상 깊어서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생맥주를 마시며 나눈 포크의 "세 개의 창"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동정이고, 또 하나는 호의이고, 다른 하나는 연민이라는 것이다. 이 포크를 여자에게 겨눴을 때 남녀의 모습을 재미있게 묘사해 놓았다. 여자는 세 개의 창을 모두 녹여 하나의 사랑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남자는 세 개의 창을 동시에 내밀지 않고 사랑의 이름으로 하나의 창만을 내민다고 하였다. 박민규 작가다운 B급 철학이다.       



요즘에는 소설과 음악으로만 무더위를 쫓는 데는 한계를 느낀다. 문학의 열정이 식은 걸까 아니면 체력이 떨어진 걸까. 아무래도 후자인 듯하다. 에어컨이라는 문명의 이기에 의지한 채  평온함에 묻혀가는 현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무더위를 쫓는 데는 뭐니 뭐니 해도 물놀이가 최고였지 아닐까 한다. 계곡보다는 하얀 모래와 밤의 낭만이 있는 해수욕장에서의 피서가 나에겐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선뜻 피서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는다. 피서지의 번거로움 때문일 것인데 냉방이 잘 되어있는 카페나 호프집이 익숙해서이기도 하고.      


옛사람들의 피서법은 무엇이었을까. 역시 물놀이가 대세였을 것 같은데 등목과 탁족이 아니었을까 한다. 다산 정약용은 더위를 물리치는 방법 중에서 <탁족>을 강조했다. 다산의 아들 정학연은 ‘더위를 물리치는 여덟 가지’를 아예 詩로 남기기도 했는데, ‘창포만큼 장수에 좋은 것이 탁족’이라고 읊었다. ‘탁족’이라는 詩語를 孟子의 글에서 가져와서인지 성리학의 냄새가 풍긴다. 아무래도 등목과 탁족은 남성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는데, 성리학이 기반이었던 조선시대 여성들의 여름 피서가 무엇이었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딸아이와 오다이바 온천 탁족


한때 도쿄의 시나가와(品川)에서 근무를 했다. 도쿄의 여름이 시작되면 바다내음이 유혹하는 동경만으로 자주 산책을 갔었다. 레인보우 브리지가 보이는 곳에 해변공원을 조성해 놓았기에 산책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태평양의 바닷물과 닿아있는 도쿄의 오다이바(お台場)의 백사장을 거닐고 거품 가득한 생맥주를 마시고 인근 온천장에 들러 <탁족>을 하고 왔다. 근데 시원한 계곡물에 <탁족>을 한 것이 아니라 뜨끈뜨끈한 온천수에 <탁족>을 했다. 특이한 경험이었는데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며 평안해하는 모습들이 실제 무더위를 잊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예로부터 음력 6월을 성하(盛夏)의 계절이라고 했다. 보름 후에는 절기상으로 입추가 된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시작된 무더위 속에서 화들짝 여름을 맞이한 기분이 든다. 한때는 <젊은 태양> 노래도 부르며 태양과 같은 열정을 불태웠다. 이제는 조용히 관조하는 성하의 계절이 되었다. 뚜아에무아의 노래 <Summer Wine>을 감상해 본다. 아무래도 오늘은 맥주보다 와인을 마셔야 할까 보다.     


방울소리 울리는 마차를 타고 

콧노래 부르며 님 찾아가네 

하늘엔 흰 구름 두둥실 떠가고 

풀벌레 다정히 우짖는 소리 

우 ~ 썸머와인. 



(뚜아에무아 썸머와인 듣기)

https://youtu.be/MqGSGcTcGgM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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