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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Aug 31. 2023

에코의 슬픔

어느 날부터 저녁 산책길 건물 입구에 웅성웅성 서성거리는 청소년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학원이나 독서실이 있는 곳이 아니었기에 주위를 살펴보았다. 최근 그곳에 청소년 출입이 가능한 코인 노래방이 생겼던 것이다.


코인 노래방이 가족과 함께가 아닌 청소년의 자유로운 출입이 무방한 곳일까, 라는 꼰대 시선으로 코인 노래방에 들어섰다. 의외로 인테리어가 깨끗하고 카페 같은 분위기였다. 성인 노래방이 폐쇄적 이발소 분위기였다면 코인 노래방은 개방적 미용실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노래 한 곡 부르고 싶은 생각이 일었다. 비록 고음 파열에 따른 고음 불가 노래 실력이지만, 코인 노래방에서는 나 홀로 부르는 즐거움이 있지 않겠는가. 코인을 넣고 자뻑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반 마이크를 통해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노래방 반주기를 통해 노래를 부르면 평소보다 더 잘 부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신의 목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발성이 길게 되어 그럴듯한 성량으로 들려진다. 그건 반주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리버브(잔향)라는 마이크의 에코(echo) 기능이 한몫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에코(echo)는 수다쟁이 요정으로 불린다. 제우스의 외도를 뒤쫓고 있는 헤라에게까지 수다를 떠느라, 헤라는 제우스를 놓쳐버렸다. 이에 화가 난 헤라는 에코에게 남보다 먼저 말할 수 없고, 남보다 한 박자 늦게 끝마디만 따라 할 수 있도록 저주를 내렸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왜 그럴까. 내가 못 하는 것은 타인도 못 해야 된다는 의미로 들린다. 바꿔 생각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남이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데 과연 그럴까? 아닐 것이다. 부러워하는 것은 결코 흠이 아니다. 내가 못 하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에코처럼 그저 남의 흉내만 내는 것이야말로 흠이 아닐까?

에코의 슬픔처럼.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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