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스스로 나이 들어감을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서서히 약해져 가는 소화력이다. 저녁 산책을 마치고도 위장의 거북함이 느껴진다. 소화를 돕기 위해 콜라를 마시는 경우도 잦아진다. 혹시나 해서 위내시경 검사를 받아보기도 했지만 위장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 단지 위장의 소화력이 약해졌을 따름이다. 그래서 올 초에 생각했던 것이 산책을 다녀와 소화를 위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먼지 쌓인 기타를 다시 꺼내 낡은 기타선을 모두 교체했다. 연습생 기타 실력이라 매듭 방식이 잘못되어서인지 4번 선이 자꾸만 느슨해져 음정이 흐트러진다. 기타 교습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친구의 가방에서 <하늘에>라는 귀한 악보가 눈에 띄었다. 이 악보는 나의 대학 동기가 원곡을 편곡하여 대학가요 예선전에 출전했던 곡이었다. 비록 예선 탈락은 했지만.
몇 해 전 가을, 그 노래를 편곡하여 예선전에 출전했던 대학 동기의 연락처를 수소문하여 맥주펍으로 불러냈다. 십수 년만에 만난 우리는 모처럼 청춘으로 돌아간 느낌으로 노래를 불렀다. 원하는 대학에 실패했던 나의 20대는 자학과 패배의식이 팽배했었기에, 그 초라했던 분위기가 노래 속에서 꺼이꺼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우리는 계속 맥주를 마시며 지난 시절에 자주 불렀던 노래들을 잔잔하게 불러보았다.
드디어 <하늘에> 악보를 펼쳤다. 작곡이 가능했던 대학 동기가 편곡한 이 노래를 좋아했다. 지금도 악보없이 멜로디와 가사를 기억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학 예선 이후 무려 30여 년 만에 이 노래를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하늘에 > 악보
마음이 외로울 땐 하늘을 바라보세요
밤하늘엔 별들이 그리고 낮에는 태양이
거기엔 땅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꿈과 자비가
당신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음을 알 것입니다.
마음이 외로울 때나 고독할 때에는
하늘을 바라보세요
바람 부는 하늘이거나 흐린 하늘이거나
비 오는 하늘이라도
사람들의 아픔을 쓰다듬는 손길은 항상 거기에 있을 겁니다.
이번에 다시 불러보니 멜로디는 여전히 마음에 드는 데, 가사가 약간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반 제작자들의 통용어로 표현해보면, 좀 더 ‘야마’가 있는 가사로 개사를 하면 더 좋을 듯싶었다. 작사라는 것은 詩하고는 성격이 다르다. 名詩라고 다 좋은 가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음의 매력이 돋보이려면 멜로디와 가사의 라임이 맞아야 좋은 노랫말이 된다.
노랫말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나는 돌발 퀴즈 하나.
대중가요 노랫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가 무엇일까. 사랑? 아니다. “너”라고 한다. 그다음이 “나”이고 “사랑”은 세 번째라고 한다. 이 셋을 조합한 <너와 나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면 만인에게 사랑받는 노래가 되지 않을까? 혹시나 해서 유튜브를 검색해 보니 같은 제목의 노래가 있다. 신기하다. 근데 처음 들어보는 노래다. 빈도수가 높은 단어만을 사용했다고 해서 명곡이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마치 세계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만 영입하는 스페인 프로축구 라 리가의 레알 마드리드가 항시 우승하는 것이 결코 아니듯이 말이다.
‘작사가를 꿈꾸며’라는 내 수필을 읽은 분들은 가끔 언제쯤 작사를 시작할 거냐고 묻는다. 작사가를 꿈꾼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글쎄 아직도 희망사항에 그치고 있다. 작사에 관련한 책도 겨우 두 권 읽었을 따름이다. 작사가의 로망이 있는 나로서는 우선, <하늘에>라는 가사를 워밍업 삼아 개사를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아제베의 음악이야기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