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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Jan 22. 2024

모작과 위작, 예술의 미묘한 경계

다시 또 문학, 음악, 그림에 관한 <딜레탕트 오디세이> 출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美大를 졸업한 딸아이에게 원고에 들어갈 삽화 데생을 의뢰했다. 저작권 논쟁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원본 그림 50점을 연필로 데생해달라는 거였다. 곧장 딸아이의 답변이 문자로 온다.

“그것도 위작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어서 곤란한데요?”


곤란은 무슨 곤란! 핑계 하나는 그럴듯하다. 역시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세상이고 천민자본주의 그림자가 딸아이에게까지 드리워졌다는 것을 느껴졌다. 나 또한 약발을 드러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당 2만 원으로 총 100만 원 어때?”


약발은 통했지만 '좋아요' 이모티콘 없이 “장당 0 하나 빼드렸습니다”라고 인심 쓰듯이 대답을 한다. 딸아이도 이 정도면 자신의 능력에 비해 금세기 최고의 버블 인플레이션이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모작, 위작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일본 파견 근무 때 신주쿠에 있는 손보저팬 미술관에서 논란의 고흐 7번째 해바라기 그림을 감상했었다. 고흐 그림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고흐의 제수인 요한나에 의해서다. 요한나는 동생 테오의 부인으로 훗날 재혼한 남편(화가)과 고흐의 그림을 정리한 덕택이었다. 당시에는 고흐가 무명화가였기에 고흐 그림의 진품 여부는 철저히 요한나 부부의 판정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고흐의 위작이 많이 생긴 배경이다.


미술사에서 위작 사건은 동서고금을 통해 만연되어 왔다.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같은 세계적 갤러리에서도 위작이 전시된다고 하니 허탈하기 짝이 없다.



울트라마린 블루의 색채가 매혹인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의 위작을 보면 나는 어이가 없어진다. 두 그림을 동시에 보면 대충 구분이 되지만 따로따로 보면 일반인의 감각으로는 도무지 진품과 위작의 구분이 안 되니 말이다.


기호학자 보드리야드의 시뮬라시옹 세계가 실감이 날 뿐이다. 다시 한번 생각한다, 모작, 위작도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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