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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Jun 27. 2019

왜 그리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동안(童顔)의 애증

  자정이 가까워지면 심호흡도 할 겸 베란다에 나가 자주 밤하늘을 바라본다. 여름으로 가는 계절에는 남쪽 하늘에서 육안으로 쉽게 목성을 관측할 수 있기에 나타난 습관이다. 목성의 줄무늬와 갈릴레이 위성을 찾으려 휴대용 망원경의 초점을 맞춰본다. 미니 망원경에 보일 리가 만무하지만 상상으로나마 관측을 하는 것이다. 렌즈에 초롱하게 빛나는 목성의 별빛을 마음에 담고 나니 이태백의 월하독작이 떠오른다. 거품 가득한 생맥주의 유혹이 별빛에 춤을 사른다.


  아내가 잠이 든 시각, 살며시 아들과 현관을 나선다. 나의 분위기에 맞는 맥주펍을 발견했다는 아들을 따라 허황한 불빛의 밤길을 나선다. 최근 오픈한 듯한 일본식 이자카야다.

  군대를 마치고 복학한 아들이지만 주민등록증 제시를 받는다. 어서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아들 또래의 시기엔 동안(童顔)도 비애 아닌 비애다. 내가 20대 시절에 자주 겪었던 데자뷔가 아닐 수 없다. 마음속으로 한 줄기 웃음을 흘린다. 결코 마음 편한 웃음이 아니다.


  그때는 왜 그리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동안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19금 영화관에 갈 때가 가장 곤혹스러웠다. 당당히 입장하는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입장권을 들고도 제지를 당했다.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승차권을 내고 시내버스를 타던 시절, 청소년 승차권 도용 때는 내가 성인이라는 것을 귀신처럼 알아챘다. 버스기사도 웠다.


  성인 대접을 받아야 할 상황에는 미성년으로, 미성년으로 둔갑하려는 상황에는 성년으로 알아채는 씁쓰레한 시추에이션에 불만 가득한 내 청춘이었다.

  어서 동안을 벗어나고 싶었다. 세월이 흘러 나이테가 생기면 자연히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어른이 되면 지혜가 저절로 쌓이는 줄 알았다. 책임과 의무보다도 무제한의 권리가 보장되는 줄 알았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강물이 흐르듯이 무심의 세월이 흐르던 어느 날. 신도림을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아저씨 자리에 앉으세요’ 라는 자리 양보를 처음 받았을 때, 동안의 비애 못지않게 중년의 씁쓰레함을 느꼈다. 공놀이 하던 초등학생이 내 흰머리를 보았는지 ‘할아버지 공 좀 던져주세요’라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도 했다.

2015년 어느 날 아침

  체지방이 늘고 탈모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그토록 저주스러웠던 동안이 그립다. 그래도 한때는 친구들과 만나면 동안의 부러움을 받기는 했다. 그 부러움이 나이대접을 받지 못했던 지난날의 서운함을 보상해 준 듯하여 은근히 동안을 즐기기도 했다.


  동안(童顔)이라는 단어가 결코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오히려 동안에 취해 나잇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웠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도 충분했는지 뒤돌아본다. 안분지족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할 때다.  


  아들과 맥주잔을 부딪치다 불쑥 궁금증이 생겼다. 아들은 요즘 주말이면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너도 호프집에 오는 동안의 청년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느냐?”

  “당근이죠, 저도 매번 꺼내잖아요!”


아, 사내의 강건한 육체를 물려주지 못한 아들에게 죄책감에 젖은 독백이 밀려든다.

미안하다 아들아. 맥주나 마시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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