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쿵이

불가근불가원을 생각하며

by 쟝아제베도

우리 사회도 반려동물의 문화가 깊숙이 스며들었다. 반려동물과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변함없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홀로 생활하는 사람이 늘고 인간관계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동물과 지내는 시간을 더 좋아하기에 생긴 문화다.


유난히 동물을 귀여워하는 딸아이가 원룸으로 독립하면서 갓 태어난 고양이 한 마리를 분양받았다. 이름도 “꿍”이라고 지었다는데, 나는 “꿍” 보다는 “쿵”이라는 발음이 더 자연스러워 지금껏 딸아이와는 다르게 예명이라며 “쿵”이라 부르고 있다. 나는 동물을 좋아는 하지만 기르는 것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마치 꽃은 좋아하지만 가꾸기는 싫어하는 것처럼.


딸아이가 방학을 하면 쿵이를 광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쿵이는 딸아이가 공부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면 책상 한쪽에 다소곳이 앉아 있거나 조는 모습으로 곁을 지킨다. 딸아이가 외출을 하면 현관문에서 딸아이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쿵이의 이런 모습이 귀여워 한 번 안아보려고 하면, 강아지처럼 반갑게 꼬리를 치기는커녕 오히려 내 품 속을 빠져나가려고 한다. 귀여워하는 내 의지에 비해 쿵이의 반응은 그저 아쉽기 그지없다.


강아지는 주인에게 순종을 하는 편이지만 고양이에게는 적당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고양이의 적당한 거리감이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많은 판단을 헤아리게 한다. 이런 특성으로 말미암아 문학작품에서는 고양이가 자주 등장한다. 고양이의 등장은 인간의 내면을 헤아리는 데 있어 안성맞춤일 것이다.


고양이의 대표적 소설에는 나쓰메 소세키가 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있다. 이 소설은 한 마리의 고양이가 가깝게는 주인의 가식을, 멀리는 사회의 여러 인간군상의 모순과 불합리를 고양이 눈을 통해 풍자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근성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하게한다.


나는 사회에서 모임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선은 내 자유가 줄어드는 얽매임이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어느 순간에서 관심이 무관심으로 바뀌는 과정이 싫기 때문이다.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할 정도로 뜨겁게 타오르는 분위기도 서로를 알아 갈수록 부딪치게 되는데, 서로의 이해와 배려가 없으면 분명히 돌아서게 되어 있다. 사람 관계가 다 그런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적당한 선을 지키고 서로의 에티켓을 존중하면 좋은 인연이 오래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도 쿵이의 모습에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관계의 미학을 생각하게 한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쿵이.png 오늘도 여전히 도도한 쿵이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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