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제베 Jul 16. 2019

#15. 롱샴은 명품이 아니었나?

파리 여행을 마치고 현관에 들어서며

나 홀로 파리 여행을 즐겁게 마치고 인천공항을 거쳐 광주에 도착한다. 파리는 여행 첫날의 부정적 인상과는 다르게 예술적 매력을 흠뻑 느낀 도시였다.


아파트 현관에 들어선다. 아들에게는 캐리어를 건네고 아내에게는 쇼핑백을 건넨다. 쇼핑백을 한쪽 구석에 무심코 내려놓은 아내는 곧장 부엌으로 가더니 가스레인지를 켠다.

아, 내 마음속에는 가스레인지의 불연소 불꽃의 그을음처럼 허탈하고 안타까운 심사가 검게 피어오른다.


이렇게 명품 브랜드가 많았나?


여행 둘째 날이 생각 났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일일투어 자유 시간을 보낼 때다. 다음 주에 아내의 생일이 있기에 이번 선물로 핸드백과 향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루이뷔통 본사에는 못 들어가고 근처의 어느 면세점에 들어갔다.


여행을 앞두고 프랑스어 기초 공부를 하면서 발음을 익혔기에 브랜드명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명품을 감상다. 한때 ‘채널’이라고 발음했던 샤넬(CHANEL) 매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향수에 눈길이 다. 가격표를 보고선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생각에 고개가 돌려다. 몇 걸음 옮기니 아내에게 어울릴 듯한 콤팩트한 핸드백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역시나. 일일투어 일행인 신혼의 새댁에게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다.


  ‘아내에게 모처럼 명품 선물을 하려 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네요.’

  ‘그러면 중저가 핸드백인 롱샴을 사지 그래요?’


결국 빈손으로 면세점을 나와 샹젤리제를 걸으며 생각다. 도대체 명품이란 게 뭐지? 까닭 모를 분노와 자괴감이 내 마음을 무겁게 다. 언젠가 읽었던 명품에 관한 에세이가 생각다.

품질, 디자이너의 정신, 긴 안목, 이런 건 다 개소리다. 그냥 근사하게 보이고 싶은 거다. 과시할 수 있는 순간의 도취! 명품을 사며, 도취한 듯, 자신의 가치가 상승한 듯...... 그런 옷을 사는 날에는 또 착각에 빠져 초대받지 않은 칸 영화제에 쳐들어갈지도 모르는 나 자신이 두렵다.
김경 에세이 <뷰티풀 몬스터>


여성의 명품만 그러겠는가. 남성의 고급 자동차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무조건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몰아 부칠 사안은 아니다. 바꿔 말하면 명품에 대한 역차별일 수도 있다. 명품 마니아의 입장에서는 이런 부정적 시선에 대해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의 신포도’ 이야기쯤으로 흘리고 말 것이다.


바리스터가 커피 맛을 인정하고 소믈리에가 와인 맛을 인정하듯이,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명품의 진가를 하루아침에 인정하기는 어렵다. 그냥 명품의 진가를 떠나서 돈이 있으면 일반인도 명품을 사는 것이다. 다만 관종적인 타인의 시선을 위해서라면 빚을 내서라도 명품으로 꾸미는 허세가 문제인 것이다.    



명품 마니아인 영국 여인 머뭇거려지는 나의 명품 정서에 일부 수긍가는 이야기를 했다.

굳이 제 패션 컨셉이 있다면 그건 잘 모셔두기보다는 잘 소모하는 거예요. 샤넬이 아니라 비비안 웨스트우드 드레스라고 해도 그걸 입고 슈퍼에 못 갈 이유가 없어요. 패션이 컨셉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으면 하는 거죠.
김경 에세이 <뷰티풀 몬스터>

나를 포함한 남성들은 명품을 몇 개정도 알고 있을까? 얼마 전까지 나는 샤넬, 루이뷔통, 이브 생 로랑 정도만 기억했다. 이것도 브랜드 명칭만 기억했지 실제 명품 가방이 지금 내 눈앞에 있어도 알아 재치 못한다. 나에게는 명품이 아니라 가방이라는 이데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롱샴은 드골공항 면세점에 단독 매장까지 있는데도 명품이 아니었나?


파리에서 출국 심사를 마치고 드골공항 면세점을 지 때다. 가방 코너가 눈에 띄었다. 코너 이름이 <LONGCHAMP>이었다. 예전 같으면 ‘롱 샴푸’로 읽었을 터이다. 샹젤리제에서 일일투어 일행이었던 신혼 새댁이 추천했던 그 핸드백이다. 면세점에 단독 매장이 있는 것을 보니 그래도 이름 있는 핸드백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를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내 생애 가장 비싼 가격으로 핸드백을 샀다.


아파트 현관에서 롱샴(LONGCHAMP paris) 브랜드가 선명한 쇼핑백을 보고도 아내는 롱샴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마 샤넬이나 루이뷔통이었다면 금방 알아보았을지도 모른다.

명품 하나 지닌다고 사람 자체가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과 명품의 심리는 인정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어두운 골목에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그런 명품을 선물할 기회를 만들고 싶다. 나도 언젠가는.

  네? 분수껏 살아야 한다고요?

그것도 맞는 말씀이고요.

아제베의 파리여행 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카덴차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