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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Apr 05. 2019

디지털 노마드는 장기근속이 부럽다

일상에서

요즘 퇴사 이야기를 다룬 책과 글이 부쩍 많아졌다. 평생직장 개념보다는 자아실현에 더 비중을 두는 직장문화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궁금한 게 있다. 솔깃한 퇴사 이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내와 여동생의 끈기가 부럽다. 입사부터 오늘까지 한 회사에서만 줄곧 직장생활 30년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기록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은행 적금 3년을 넘겨본 적이 없고, 한 직장에서 5년을 넘겨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30년 근속이 대단하지 아닐 수 없다.

  

장기근속이 가능한 이유 중의 하나가 회사의 안정된 울타리일 것이다. 간호사인 아내는 대학병원에서, 여동생은 공기업 인증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곳에 근무하는 직원 모두가 신입부터 정년까지 평생직장으로 마치는 것일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도 중도 퇴직자가 생기는 것을 보면 회사의 울타리가 전부는 아니다. 자의든 타의든 기업문화에 도태되지 않고 잘 적응해 가는 것이 더 큰 이유가 될 것이다. 물론, 취향에 앞서 생업을 위해 근무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현실도 빼놓을 수 없다.  


IMF 이후 공무원이 인기 있는 직업군이 되었다. 직장으로서의 안정감이다. 맹자가 강조한 항산항심의 철학처럼 안정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의 결과일 것이다. 다만, 안정감 속에서 향유하는 행복이 자신의 취향대로 오래오래 지속되느냐가 의문이고, 모두가 공무원이 될 수 없는 것도 한계다.

  

고전 평론가 고미숙은 지금의 시대는 ‘백수의 시대’라고 했다. 청년백수, 정년 백수, 노년 백수 시대라는 데 지금의 취업 철학은 ‘백수’가 정답이라는 것이다. 백수라는 표현은 일하지 않고 그냥 빈둥거리며 논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인간은 어디에서든 기본적인 노동을 해야 한다. 속세를 떠난 수도승도 운력(울력)이라는 노동을 하지 않던가. 백수라는 표현은 대기업이라든가 정규직이라든가 하는 치열한 취업전선에서 한발 물러나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를 ‘직업’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직업 따로 인생 따로가 아니라 ‘삶의 통째’가 직업이 된다는 것이다.   

  

어느 평론가의 말을 빌면 음악에 심취해 수십 년을 살다 보니 음악평론가가 되었고, 그저 영화에 심취해 수십 년을 살다 보니 영화평론가가 되었다고 했다. 고미숙이나 최민석은 백수로 살다가 고전평론가가 되었고 소설가가 되었다. 이렇듯 백수로 살다 보면 자신의 새로운 출구가 생긴다고 했다.

  

한때는 이런 성공사례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낮은 성공률에 이르기까지 백수로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과 적극성이 결여된 듯한 습관이 부정적으로 여겨진 비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본인의 재능과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팩트를 기저에 깔아놓고 하는 이야기다. 노력없는 백수가 아니라 무한한 잠재력을 다듬어 가는 백수인 것이다.    


오래 전에 나는 할리우드식 직업에 관심을 가졌었다.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관련 종사자가 일시적으로 모여 영화를 만든다. 영화가 완성되면 각자 흩어져 힐링의 여행이라든가 새로운 신기술을 보강한다. 다시 또 새로운 영화 제작이 시작되면 그때 또다시 만나 함께 일하는 방식의 직업을 꿈꾸었다.   

  

십수 년 전 퇴사를 하고 IT회사를 창업했다. 10여 년을 직원과 함께 회사를 운영했지만 영업이 일정치 않았다. 고정비용의 리스크를 줄이려다 보니 직원을 줄이고 프리랜서와 일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내 자신도 프리랜서가 되어 있었다.

IT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가졌기에 할리우드식 작업 분위기로 프리랜서들과 일을 한다. 망중한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삶의 통째가 직업'이다 보니 휴무의 개념이 희미해진다는 단점이다. 간밤에도 사촌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후 새벽까지 프로그래밍을 했다. 납기를 앞두고 미완성 부분이 생기면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휴일에도 일을 해야 한다.     


디지털 노마드는 프로젝트에 따라 명함이 자주 바뀐다. 나도 그렇다. 소리 따라 흐르는 소리꾼도 아닌 내가, 디아스포라도 아닌 내가, 광주, 후쿠오카, 도쿄로 떠돌며 일을 하다 보니 최근 내 명함도 세 번이나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일을 하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과연 내 생애에 정착과 은퇴라는 게 있을까?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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