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자궁내막술은 자궁내부를 깨끗하게 청소함과 동시에 치유과정에서 조금 더 건강한 자궁을 만들어 임신확률을 높여주는 작업이라고 했다. 와이프의 자궁 내부 상태가 좋지는 못해 시도해 보기로 결정했지만, 인터넷상에 상당한 고통을 수반한다는 후기들이 많아 우리 둘 다 잔뜩 겁을 먹었다.
출근 후 얼마 안 있어 와이프에게 톡이 왔다.
'이제 시작한다.'
그렇게 한 20분 정도가 지났나? 전화벨이 울렸다.
"어~ 잘했어?"
"엄청 아팠어...."
전화기 너머로 약간 울먹인듯한 와이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아팠어?"
"응 난자채취랑 배아이식보다 더 아팠어!!"
내용을 들어보니, 시술시간 자체는 5분으로 길지 않았지만, 그간 겪어왔던 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레벨의 통증을 느낀 듯했다.
"고생했어. 곧 점심이니까 식사랑 사서 들어가자. 건강한 걸로 먹어!"
그 말에 와이프는 병원 아래 있는 샐러드 가게에서 콥샐러드를 포장해 집으로 향했고, 오후에는 휴식을 취했다.
시험관 이후 와이프의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자는데도 불구하고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상관없이 피곤해했고, 하루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처리해내지 못했다. 기한이 정해진 일들이었기에 혹시나 넘길까 하는 마음에 주사 맞을 시기를 생각하며 욕먹을 각오로 와이프에게 몇 번(?) 언급을 했다. 그런데 이전과는 반응이 확연히 달랐다. 와이프는 화낼 기력도 없는지 내 도발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고, 그런 힘없는 태도에 오히려 내가 조금 짜증이 났다.
그런 식으로 조용한 충돌을 몇 번 반복했고, 둘 사이에 평소 같았으면 남지 않았을 앙금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기분을 느꼈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전에도 언급했던 불확실성이었다. 1차의 지난한 과정을 겪고 자궁내막술까지 했지만, 냉정하게 우리의 위치는 여전히 원점이다.
시험관 시술은 컴퓨터 언어처럼 오직 0 아니면 1로 이루어져 있는 냉정한 녀석이다. 1이 되지 못한 우리는 언제나 0의 상태이며, 그 확률 따윈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는 1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만을 믿고 달려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목표지점이 없는 인간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1만 바라보지 않도록 무언가 다른 목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약해지는 와이프의 체력과 늘어나는 부부간 트러블을 넘어설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가 필요했다.
운동이야 집에서 홈트를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홈트는 몸에는 분명히 좋았지만, '재미'와 '승부욕'이 부재했다. 우리를 신나게 하진 못했다. 재미도 느끼고 나중에도 부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고민해 보니 골프, 테니스, 당구, 탁구 등이 물망에 올랐다.
먼저, 골프나 테니스는 들어가는 비용이나 시간이 너무 클 것 같아 탈락
당구는 향후 함께 할 수 있는 인적 풀이 너무 협소해서 탈락
최종적으로 우리가 선택한 스포츠는 '탁구'였다. 그날의 분위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주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탁구장에 전활 걸었고, 간략히 가격이랑 시간을 물어봄으로써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퇴근 하자마자 저녁도 먹지 않고 달려간 탁구장에서 레슨을 등록을 했다. 마땅한 운동화가 없던 와이프는 신발도 샀다. 우리는 우리의 결연한 의지와 실행력이 박수를 쳤다.
첫 레슨, 코치님의 말에 따라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운동신경이 있던 와이프는 코치님의 칭찬을 한 몸에 받았고, 잡생각 없이 탁구공에만 집중하다 보니 제법 즐거워 보였다. 나 또한 옆에서 탁구공이 부서질 정도로 랠리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즐겁게 연습에 매진했다.
돌아오는 길, 왠지 탁구가 우리에게 잘 맞는 것 같다며 체력도 기르고 우리 부부의 평생운동으로 만들어 보자며 다시 한번 파이팅을 외쳤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병원 방문일이 돌아왔다. 선생님은 저번에 했던 자궁내막술 결과가 좋다고 했다. 용종도 제거해 깨끗해졌으니, 이번엔 자연임신을 시도해 보자며 날짜를 잡아주셨다.
명확한 날짜와 높아졌다는 확률, 이번에 성공하면 앞서 시험관의 고통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감!, 덤으로 임신 후에도 그 귀찮고 고통스러운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우리 부부를 다시 한번 불타오르게 만들었다.(이렇게 생각하면 자연임신이란 참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사 선생님이 잡아준 날짜가 도래할 때까지 금주, 운동, 건강한 음식, 충분한 수면을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아쉽지만 다음 주에 있을 회식에는 삼겹살에 콜라를 마셔야 할 것 같다.
이 도전의 결과 또한 장담할 수 없다. 실패 시 우리 부부는 바로 2차 시험관을 시도하게 된다. 너무 큰 기대도 독이지만 너무 큰 비관도 마찬가지로 인간을 실의에 빠뜨리곤 하니, 멀리 보지 않고 의사 선생님이 찍어준 날짜에만 집중해 후회 없이 도전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