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과 오지랖의 경계
적정한 오지랖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어제 보험 들었던 분한테 연락이 왔는데, 이번에 더 좋은 보험이 나왔다고 추천해 주시는 거야. 그래서 어떡할지 고민이야."
점심시간, 동료직원이 정말 고민이라는 듯 이야기를 꺼냈고, 이는 나의 오지랖 센서를 가동했다.
"그래요? 지금 얼마나 넣고 있는데요?"
동료는 자신이 보험에 들게 된 과정과 금액 등에 대해 대략 말해주었다.
우리 회사의 많지 않은 월급 대비 이미 과도한 보험료
설계사는 그 금액에 30%가 더 상승하는 보험을 권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음... 지금 것도 너무 비싼 것 같은데요?"
"그치? 나도 이번에는 거절하려고."
기존의 보험도 너무 과한 상태였지만, 이미 10년을 넘게 납입한 상태라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상황
"혹시 제가 보험증서를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과거 어머니 지인을 통해 든 보험이 너무 엉망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름 시간을 들여 공부를 했던 터라, 괜히 그때 생각이 나 도움을 주고 싶어 물었다.
"아... 그냥 추가로 들지는 않고 지금까지 납입한 건 그대로 들고 가려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쓸데없는 갱신형 특약이 들어있는 거면 그건 삭제하시는 걸 추천드릴게요. 지금 보험료가 좀 과하신 것 같아서요."
"응, 알겠어~"
이야기를 잘 마쳤지만, 뒷 느낌이 개운치 않았다. 그분이 얻고자 했던 것은 추가보험을 들지 않는 게 낫겠다는 '동의'였는데, 나는 지금껏 잘 넣어왔던 보험에 대해서까지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해 버린 것이다.
'응, 알겠어'
라는 말에는 본인은 느꼈을지 모르겠으나 '약간의 불쾌함'이 내 포되어어 있었고, 나는 또 아차 싶었다.
내가 아는 분야에서는 나도 모르게 과도하게 정보를 제공하려는 나의 습성, 오지랖.
대화를 하다 보면 나오는 이러한 습성이 정말 남을 위한 것인지, 나의 지식을 뽐내기 위한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아마 그 중간쯤에 후자에 조금 더 가까이 위치하고 있지 않을까?
나를 포함해 사람들은 대화 시 '원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거길 건드리지 않으면 뭔가 대화가 헛도는 느낌이 들어 아쉽지만, 넘어서서 들어오면 오히려 불편함을 넘어 불쾌감까지 느껴지곤 했다.
그 모호함이 싫어 항상 상대와 멀찍이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편을 택했다. 그 결과 서로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장점이 생겼지만, 소위 '정'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서서히 소멸되어 가는 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보니
'불편하더라도 조금 더 부딪힐걸 그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과 부딪히기보단 피하는 걸 택하다 보니 모난 돌이 돼버린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둥글둥글한 돌멩이 같은 사람을 보면 참 보기 좋고 부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상대의 영역을 쉽사리 넘어서지 않으면서, 그 경계를 잘 지켜나가 오히려 내가 먼저 다가서게 만드는 능력. 그런 사람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지고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그 생각의 끝에서 내린 나만의 결론은?
'지금이라도 오지랖 좀 제대로 부리며 살아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