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는 삶의 고통

그 고통에서 빠져나왔던 개인적 경험

by CMOONS

6시 퇴근송이 울리자 집에 갈 채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일할 시간이라도 된 양 키보드를 더 신나게 두드리기 시작한다. 나는 퇴근 시간의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 사무실을 짤막한 인사만 남긴 채 힘차게 박차고 나온다. 오늘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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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나는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지나치게 눈치를 보았고,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자유롭던 대학 생활이 끝나고 찾아온 조직생활의 첫 단추를 잘 끼워야겠다는 강박 때문이었으리라. '군 생활'을 통해 그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을 시 얼마나 큰 파급효과로 돌아오는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회사 생활은 매우 바쁘고 정신없었다. 일이 많을 땐 점심도 먹지 못한 채 전화 통화를 해야 했고, 퇴근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대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남아있는 팀장이 퇴근하기 전까지 무조건 자리를 지켰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상사들은 그런 분위기를 종용했고, 나는 그에 거부하지 못했다.

계약직 직원들이 정각에 맞춰 퇴근을 하고 나면 팀장은 그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내가 봤을 땐 분명 급여를 받은 만큼 업무 시간 동안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을 책임감 없는 인간들이라고, 그래서 여기서 이렇게 계약직으로 일한다며 싸잡아 까내렸다. 나보다 연차가 오래된 옆자리 계약직 여직원 한 분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팀장의 말을 거들었다. 얼마나 그들이 일을 답답하게 하는지, 책임감이 없는지에 대해 신나게 맞장구를 쳤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쵸~'등의 감정 없는 추임새를 넣었다.

하지만 내 본심은 전혀 달랐다. 일할 때 빡세게 일하고, 퇴근 시간 이후엔 단 1초라도 회사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별다른 할 일도 없으면서 늦은 저녁까지 죽치고 자릴 지키고 있는 팀장의 모습은 매우 한심하고 무능력해 보였고, 정작 중요한 일 이야기는 뒷전으로 하고 직원들 욕이나 본인 힘든 점만 말하다가 술 한잔하러 가자고 끌고 가는 모습에는 치가 떨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 조직은 너무도 작았고, 나는 막 들어온 신입사원이기에 웬만하면 적을 만들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반응들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어느 날부터 팀장은 업무의 사소한 부분부터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본인이 그냥 확인하고 체크하면 될 등기부등본이나 증빙자료들의 중요 부분에 왜 체크를 안 했는지, 왜 바쁜데 세절기 쓰레기를 비우고 있는지(정작 지는 한 번도 안 비웠고, 그때는 바쁘지도 않았다.)부터 시작해, 업무 관련 질문을 하면 분명 들었으면서 대답을 잘 안 한다는 등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웃기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했다. 더 조심스레 말하고 불합리한 부분도 어느 정도 떠안았다. 내가 조금 더 일하고, 조금 더 늦게 퇴근하고, 그들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많은 잡다한 일들이 내게 넘어와 있었고, 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더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무례하고 대담해져만 갔다.

몸이 아파 약을 먹느라 금일 회식 때는 술을 마시지 못하겠다고 사전에 개인적으로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모두 모인 회식자리에서 "술도 못 마실 거면서 회식은 왜 왔냐!!"며 핀잔을 줬고, 작은 실수라도 발견되면 사무실에서 고함을 지르며 나를 옥상으로 불러재꼈다.(그렇게 옥상에 불려갈 때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가 생각났다. 내 허리 뒤춤에 권상우가 들고 휘둘렀던 쌍절곤이 있었다면 온 힘을 다해 그 팀장의 대가리를 부숴버렸을지도 모른다.)

나의 몸과 정신은 피폐해져갔다. 사무실이 너무도 답답하게 느껴졌고, 처음엔 그 팀장이 차에 치여 죽어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나중엔 내가 사고가 나 이 삶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 도달할 때까지도 나는 그들의 눈치를 보고 내가 더 잘하면 좋은 방향으로 흐를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천천히 플랜 B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퇴사를 마음먹은 해 나는 운 좋게 이직을 했다. 급여를 절반 줄이고 이동하는 거라 주변에선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마음이 가장 우선이었다. 그렇게 이직을 했고, 드디어 노스탤지어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세상에 노스탤지어는 없었다. 기업문화나 사람들의 인성은 훨씬 좋아졌으나 낮아진 급여와 8시간의 업무시간, 욕심과 탐욕을 지닌 상사들을 대하는 것은 여전히 괴로웠고, 무엇보다 타인들의 눈치를 보고 누구에게도 욕먹고 싶지 않아 하는 성향은 여전히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게 또 몇 년, 그제야 나는 문제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런 나의 눈치 보고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으려는 성격이 내 삶에 하등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기면 길수록 사람들은 나를 가벼이 여겼고 어떤 짓을 하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반대로 나의 권리를 확실히 주장하고 경계라인을 그으면 오히려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비율은 소폭 증가할 뿐이었다.

그 이후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나의 영역을 명확히 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요구나 태도 등을 보일 때면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게 상사든 후배든 따지지 않았다. 그 결과 회사에서 나는 약간은 까칠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퇴근 시간이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리고, 누군가 못하겠다고 한 업무를 내게 떠넘기려는 경우 불공정함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를 하며 거부했다. 그런 노력이 지속되자 내게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현저히 감소했다. 더불어 '퇴근에 미친놈'이라는 이미지가 확고해졌다.

결론적으로 급여는 아쉽지만 지금의 회사 생활이 이전처럼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의 나라면 이전 회사에서도 충분히 잘해낼 수 있었겠다는 자신감까지 든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순 없단 걸 알고, 당시의 내가 지금처럼 변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단 걸 알기에 현재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동시에 성격, 기질, 성향 등으로 지칭되는 것들이 무섭다고 느껴지곤 한다. 겉으로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 같으나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아직도 '눈치'를 보고 '남들을 만족시키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전보다 다루는 게 익숙해져 있을 뿐, 나는 아직도 '지금 퇴근해도 괜찮을까?', '이러면 이 사람이 날 싫어하지 않을까?'와 같은 질문들과 매번 마주한다. 결국 완벽히 자유로워지지 못한 것이다.

현재 회사에서도 이전의 나와 유사한 상황에 빠져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한다. 안타깝게도 그들 대부분은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그럴 때면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가장 베스트는 훌륭한 관리자, 정시 퇴근, 직장 내 괴롭힘 방지 등의 좋은 문화가 잘 자리 잡는 것이겠으나 그런 시대가 도래하길 기다리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러니 주변의 변화를 기다리기보단,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을 통해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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