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다.
'정신병'이라는 글쓰기 주제를 처음 봤을 때 '대체 뭐에 대해서 써야 하지?'라는 걱정이 앞섰는데, 역시 인간이란 결국 답을 찾아내고 마는 존재다. 계속해서 주제에 대해 생각하다가 스스로에 대한 '정신병'적인 부분을 캐치했다.
그것은 바로 '계획병'
"계획이야 누구나 세울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할 수 있겠으나 나의 겨우 좀 더 딥하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계획이 틀어지는 상황이 왔을 때 엄청난 짜증과 분노가 발생한다는 것.
꽤 나이를 먹을 때까지 이러한 '계획병'이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자신이 세운 계획이 틀어지면 나처럼 이렇게 짜증이 나 하루 기분이 망가질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고 이곳저곳 여행도 다녀보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표준'이 표준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약속을 쉽게 어겼고, 남이 열심히 세운 계획을 무심하게 파괴했으며, 그런 행동들로 인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집어 놓고도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나는 그들의 그런 행동에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때마다 크게 분노했다. 그들과 부딪혔다. 그러면서 꾸역꾸역 나이를 먹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이전처럼 그들에게 크게 뭐라고 하지 않게 되었다.
정신병이 나았냐고?
전혀!!
애초에 정신병이라고 불러야 하는지조차 모호한 이 '계획병'은 내 안에서는 아직도 건재하게 작동 중이다. 여전히 아무런 계획 없이 움직이는 이들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기껏 짠 내 계획을 아무리 알려줘도 빙긋 웃으며 무너뜨리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하지만 더 이상 티를 내지는 않는다. 타인을 변화시킨다는 발상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처럼 변할 수 없듯, 그들 또한 나처럼 변할 수 없다.(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아가 '인생'이라는 것은 원래 '불확실성의 연속'인데, 그 안에서 '완벽한 계획과 실행'을 바라는 나의 욕구 자체가 어쩌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습성은 버려지지가 않는다.) 그 이후 나는 천천히 놓기 시작했다. 뭐 그렇다고 약속시간에 늦거나 준비하기로 한 것을 챙기지 않는 친구들에게 아무 지적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과거에 비해 마음을 내려놓았다는 정도?
이런 과정을 거쳐 충분히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씩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에 큰 분노를 느끼는 나를 발견할 때면 흠칫 놀라곤 한다. '이 병은 나와 평생 함께 갈 수밖에 없는 녀석인가?'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리 싫지 않은 걸 보면, 어쩌면 나는 이 병을 그냥 순수하게 좋아하는 인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