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한량의 삶을 지향하는 인간

by CMOONS

나는 원체 게으른 사람이다.



엄마가 언젠간 '넌 참 키우기 쉬웠어'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을 정도였다. 어렸을 적부터, 잘 때 자고 일어나서는 울지도 않고 조용했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반면 동생은 우렁찼다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댔다고, 네 발로 기기 시작하자 여기저기 사방팔방을 누비며 돌아다녔고 한다.



우리 형제는 조금 자라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동생은 6시가 되기 전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느라 매번 저녁 시간에 늦어 혼이 나곤 했다. 반면 나는 학교가 끝나면 곧장 소파에 누워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하교 시간부터 9시 뉴스가 시작하기 전까지 모든 채널의 편성표를 외울 정도였으니 얼마나 움직임 없이 지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나는 자꾸만 편하고 주변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을 택했고, 동생은 활동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삶을 살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런 삶이 참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그냥 하루하루를 한량처럼 살아가는 삶.



그래서였을까?



대학시절, 남들은 알바를 구해 이것도 사고, 저것도 먹고 싶어 한 것과 달리, 나는 최대한 알바를 하지 않았고, 대신 생활비를 아껴가며 한량처럼 살았다.



소위 돈 벌러 간다는 워킹홀리데이를 가서도 일주일에 20시간을 채 일하지 않았고, 부족한 생활비는 식비를 아껴가며 버텼다. 그 과정이 그리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조금 먹고, 돈이 안 드는 산책이나 책 읽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나의 한량 생활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위기를 맞았다. 어려움 끝에 취업을 했고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취업의 기쁨도 잠시, 하루 8시간 이상의 근무는 내게서 '한량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하루 24시간에서 잠자는 8시간과 일하고 출퇴근하는 시간 10시간을 빼면, 내게 남은 시간은 고작 6시간이었다. 이조차도 밥해 먹고, 씻고, 집 정리를 하다 보면 순수하게 남는 시간은 고작 2시간 남짓에 불과했다. 하루에 4시간 정도를 어딘가에 얽매여지내던 내가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묶여있게 된 것이다. 삶의 만족도는 취업과 함께 수직 하락했다. 그렇다고 갑자기 그만두자니, 잘못하면 더 길고 빡빡한 노동시간의 구렁텅이 빠질 위험이 있어 보였다.



그제야 왜 사람들이 그렇게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줄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1차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어느 정도 실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리라. 좋은 차를 가지고 싶은 사람들에겐 좋은 차를, 좋은 집을 가지고 싶은 이들에겐 좋은 집을,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겐 여행비를, 나 같은 한량에게는 일하지 않고도 일정한 금액으로 한량처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돈이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나의 자유를 위한 금액을 대충 계산해 보았다. 생각보다 큰 금액인 16억이 나왔다. 과연 근로소득으로 내가 이 돈을 벌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동시에 계속해서 회사 생활을 하며 하루 9시간이 넘는 시간을 회사에 쏟아부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럽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것저것을 알아보고 도전해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직접 하다 보니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러다 '투자'에 입문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시간의 자유'를 위해 공부를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시간을 쪼개어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한량의 삶'이 아닌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중의 여유로움을 위해 현재 누릴 수 있는 게으름을 포기한 채 자발적으로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지금까지도 나의 머리로는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게으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종종 답답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게으르고 싶지만 게으를 수 없는 굴레 속에 존재하는 나.



23년도의 끝을 향해 달려가며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생각이 나 몇 자 적어보았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삶을 살고 있거나 가까워졌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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