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만들어가는 것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 부부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평소에는 아끼며 사느라 자주 가지 못했던 동네 브런치 가게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2024년의 새해가 떠오른 1월 1일. 느지막이 일어나 따뜻하게 옷을 챙겨 입고 찾아간 가게에서 플래터 하나와 에그베네딕트를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고 샐러드, 과일, 해시브라운, 샌드위치를 순서대로 맛있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오자 천천히 남은 음식들을 먹으며 작년에 대한 소회와 금년도를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즐거운 식사를 마친 우리는 가게를 나서 집으로 돌아왔고, 기분 좋은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차를 마시며 느긋한 새해 첫날을 보냈다. 브런치 가게에 참 잘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나는 특별한 날들을 챙기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달력을 보면 무슨 기념일이 그렇게 많은지. 그것도 모자라 연인끼리 투투, 100일, 200일, 1년, 3주년 등등 기념하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상술에 쉽게 놀아나다니...'라며 혀를 차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남들이 핼러윈이나 크리스마스, 새해를 기념할 때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한 하루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기 시작하자 왜 그토록 많은 기념일들이 있고, 그것도 부족해 더 많은 기념일들을 만들어내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하루 쳇바퀴 돌 듯 굴러가는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그런 '이벤트'라도 없다면 인생이 얼마나 삭막하고 지루하겠는가?
특히 직장인의 삶은 학생 때보다 더 심각했다. 어린이집 > 유치원 >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 대학교라는 삶의 중간중간에 찾아오는 거대한 변화들 덕에 어찌 보면 어렸을 적의 삶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일단 어른들이 시키는 것만 하는데도 시간이 빠듯했고, 그걸 쪼개 친구들과 놀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장인의 삶은 달랐다. 출근, 퇴근의 반복. 이직 등의 자발적 노력이 없는 이상 삶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만약 어떤 직장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일 > 집 > 일 >집을 반복하며 직장을 벗어나선 누구도 만나지 않은 채 단조롭게 살아갈 수 있을 정도다. 나 또한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직장 생활이 길어지던 어느 날, 제철 음식, 새해, 입추, 복날 등의 공식적인 날은 기본, 친구들과도 분기 혹은 반기별 계를 묻어 '이벤트'를 만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쳇바퀴 돌아가듯 살아가는 삭막한 하루하루에 활력이 되어줄 '사건'들을 스스로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의도된 삶의 이벤트'는 삶의 윤활유가 되었다. 맛있는 제철 음식이 나올 때면 그걸 핑계로 부모님을 찾았고, 작게 시작한 계를 통해 이전에는 자주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던 친구들을 반기마다 볼 수 있게 되었다.
회사는 여전히 나를 쳇바퀴 속 '기운 없는 햄스터'처럼 만들곤 했지만, 달력에 표시된 다양한 '이벤트'들이 여전히 쳇바퀴 속일지라도 적어도 '활력 있는 햄스터' 정도론 만들어주었으니, 그 정도면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 시기에 맞춰 절을 가고, 제철 음식을 먹이고, 졸려 죽겠는데 굳이 해돋이를 데리고 가시던 부모님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그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이해가 된다. 갑자기 건강하실 때 더 많은 '이벤트'를 함께하며 그분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나아가 이번 해 나의 삶도 더 많은 '이벤트'로 풍성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