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라는 남자 - 1부

by CMOONS

P를 처음 본건 대학교 입학 전 새내기들을 위한 모임에서였다.


쭈뼛쭈뼛 모여있는 사람들 사이로 몇몇 사람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들이 '학생회 소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롭게 학기를 시작하는 신입생들을 위해 간단히 학교 소개를 하고, 집을 구하거나 학교생활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고자 해당 모임을 주최한 것이었다.


P는 학생회의 회장을 맡고 있었고, 깡마르긴 했지만 얼굴은 제법 잘생긴 시골틱한 느낌의 남자였다.


우리는 간단히 학교 구경을 하고,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사는 밥을 먹은 후 각자 일정에 따라 흩어졌다.


나는 집을 구해야 했고, 마침 학생회 선배 중 집을 많이 구해본 이가 있어 그 사람과 함께 길을 나섰다.


아쉽게도 P는 볼일이 있는지 짤막한 작별 인사를 하고는 바로 무리를 떠났다.


시간이 흘러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등교를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움과 함께 약간의 불안감이 느껴졌다.


‘이래도 되나?’


고등학교에 비하면 널럴하디 널럴한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함께 수업을 들었던 동기가 오후에 동아리 설명회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잘 됐다 싶어 참석을 했다.


우리가 도착할 즘 교실은 이미 많은 학생들로 채워져 있었다.


구석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학생회장 P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눈인사를 하려 했지만, P의 시선은 나를 향하는 듯하다 그냥 지나쳤다.


시작 시간이 되자 P가 앞으로 나와 본인 소개를 했고, 어떤 순서로 동아리 설명회가 진행되는지에 대해 안내해 주었다.


순서는 학생회, 동아리A, 동아리B, 동아리C 순이었다.


첫 번째로 학생회의 소개가 시작되었다.


요상한 음악과 함께 갑자기 후레쉬맨 복장을 한 사람들이 나와 칼군무를 추기 시작했다.


제법 그럴싸한 공연에 많은 이들이 얼굴에 웃음을 보였고, 제법 깊은 인상을 남기며 끝이 났다.


음악이 완전히 끝난 후, 후레쉬맨 탈을 벗자 땀범벅이 된 사람들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중에는 P도 있었다.


P는 간단하게 학생회 소개를 하며 즐겁게 학교생활해 볼 친구들을 찾는다며 홍보를 한 후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이후로 순서대로 동아리 설명이 계속됐지만, 내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내 마음은 결정을 마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의 학생회 생활이 시작되었다.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사실은 학생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제대로 학생회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수업이 없을 땐 과방을 지키고, 학생회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행사에 적극적으로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학생회 활동을 계속할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이 구분되었다.


학기 초 과방을 가득 채웠던 친구들의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줄어들었고, 마음에 드는 친구 혹은 이성이 있는 친구들, 어느새 선배들과 친해진 몇몇 아이들만이 남아 자리를 지켰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는데, 학생회 생활이 그리 재밌었던 건 아니었다.


수업을 듣고 시간이 뜨면 갈 곳이 마땅치 않았고, 가끔씩 학생회장인 P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이유였다.


넘쳐 났던 자유로 인해 지지리도 가지 않는 듯했던 시간은 어느새 순식간에 흘렀다.


두 번의 시험과 MT, 대학 축제, 운동회를 거치고 나니 1학기가 끝이 났고, 그 사이 다른 동아리나 아싸의 길을 택하지 않고 학생회에 남은 사람들은 나름의 전우애가 생길 정도로 친해져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식사와 술자리는 가까운 선후배 관계와 연인 사이를 만들기에 충분했고, 배신에 치를 떨며 학생회를 탈퇴한 사람도 한 둘 있을 정도로 갈등 또한 적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1학기가 끝나갈 무렵까지 P와 특별한 관계가 되지 못했다.


학생회장은 생각보다 바빴고,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에 여자가 많았다.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P의 주변을 맴도는 여자들이 학생회 말고도 꽤나 있어 보였고, P는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학생회 일에만 매진하며 한 학기를 보내는 듯했다.


그렇게 대입 후 첫 번째 여름방학을 맞았다.


알바를 하지 않았던 내게 여름방학은 시간이 넘치다 못해 홍수가 난 것처럼 넘쳐흐르는 기간이었다.


학교에 머무르기로 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저녁이면 함께 술을 마셔댔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남아돌았다.


P 또한 학교에 남아 학생회 일을 했기에 방학에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종종 P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P는 조금 힘들어 보였다.


1학기 때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선배들과의 갈등, 학생회 관련 금전 문제들로 제법 큰 소리가 오갔고, 그 결과 학생회 내 분위기가 다소 냉랭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P는 단 한 번도 그 주제로 후배들에게 푸념이나 하소연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학에도 여기저기 열심히 뛰어다니며 일했고, 그런 P의 모습에서 대단함과 동시에 종종 불안함이 느껴졌다.


개학을 2주 앞두고 P는 잠깐 고향에 다녀온다며 학교를 떠났다.


P가 없는 학생회실은 큰 의미가 없었기에 나도 고향으로 갔고 개학 전날에서야 학교로 돌아왔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랜만에 학생회실을 찾았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유독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하던 선배 중 한 명인 D가


"당분간은 입조심해 줬으면 좋겠다."


라고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말한 후 과방에서 나갔다.


"미친 새끼네."


"어쩐지 좀 이상하더라니까."


"그래도 열심히는 하시는 것 같았는데."


"야, 그게 겉으로만 그랬다는 거잖아. D선배 이야기 못 들었어?"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는 동기들을 바라보다 내가 물었다.


"누구 이야기하는 거야?"


동기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안쓰러운 눈빛을 하며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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