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시각에서 바라본 시험관 시술_3
불확실성의 고통 > 물리적 고통
겨우 몸을 일으켜 아침 요가를 한 후 아침을 먹고 씻고 나면 우리 둘의 휴대폰에서 동시에 알람이 울린다.
아침 8시 반.
와이프는 너무도 당연스럽게 주사기를 꺼내 배에 꽂아 넣고 나는 담담히 그 광경을 지켜본다.
"오늘은 좀 어때? 많이 아파?"
"응, 오늘은 조금 더 아프네."
일명 '돌주사'라 불리는 녀석은 일정한 기준이 없다.
어떤 날은 배를 몹시 딱딱하게 만들어 극심한 통증을 주고 또 어떤 날은 와이프에게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
인간은 대부분의 것에 쉽게 익숙해진다.
스마트폰, 늦잠, 쉽게 성질내는 습관, 타인에게 함부로 대하는 태도 등 별다른 노력 없이도 익숙해지는 것들이 세상에는 아주 많다. 그러나 '고통'이 수반된 것들에는 쉬이 익숙해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매일 아침 과업처럼 맞고 있는 주사임에도 뾰족한 주삿바늘이 배꼽아래 보드라운 살을 뚫고 들어오는 감각은 미세하게라도 인간의 표정을 일그러뜨리게 만든다.
거기에 홀짝 놀이처럼 찾아오는 고통의 편차는 주사를 맞는 이에게 신체적 경직과 함께 마음에 긴장감마저 부여한다.
꾸준히 먹는 '약'도 자주 까먹고 성가셔하던 와이프에게 '주사'라는 것의 존재는 '어나더 레벨'의 과업처럼 느껴질 것이 분명했다.
분명 장기전으로 발을 내디뎠던 '시험관에 대한 시각'이 천천히 변화해가고 있었다.
"우리 지원금이 끝날 때까지는 열심히 해보자"라고 다짐했던 마음은 주삿바늘이 살을 파고드는 물리적 영역만큼 미세하지만 아주 조금씩 '손상'되어갔다.
어느 날 저녁을 먹던 와이프가 갑자기 내게 말했다.
"오빠, 나 인터넷에서 왜들 그렇게 얼리임테기를 하는지 깨닫게 됐어."
병원에서는 얼리임테기의 사용을 추천하지 않았고, 꼭 9월 1일 있을 피검사로 결과를 확인하라고 했다.
이유인즉슨,
첫째, 얼리임테기는 부정확하고(마음만 오락가락하게 함)
둘째, 임테기의 결과를 너무 믿고는 힘이 빠져 약과 주사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 길에 우리 둘은
"아니, 이게 대체 얼마짜린데 얼리임테기만 믿고 약이랑 주사를 마음대로 끊는 거야? 이해가 안 되네."
라며 이해를 못 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랬던 그녀가 얼리임테기만으로 그런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겠다며 말을 꺼낸 것이다. 만약 임신이 아니라면 쓸데없이 맞아야 하는 주사의 고통과 호르몬의 변화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래도 우리 임테기는 하지 말자, 괜히 일희일비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와이프도 그 말을 듣더니 "그렇지?"라며 다행히 받아주었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와이프보다 성격이 급했던 나 또한 결과를 여간 확인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부정확하더라도 그 수치가 '임신'을 향해 변해가는 모습을 본다면 우리 둘이 조금 더 희망을 갖고, 와이프도 조금 더 수월하게 주사를 맞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이러한 이유로 우리 부부는 꾹 참고 9월 1일에 병원에서 이를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지원금이 끝날 때까지 해보자던 우리의 마음은
어느새
"이번에 됐으면 좋겠다."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바뀌어있었다.
그 사이 와이프의 몸상태는 너무 쉽게 왔다 갔다 했다. 호르몬 탓에 안 나던 여드름이 났고, 갑작스레 열이 올랐고, 안 그래도 많던 잠이 부쩍 더 늘었다.
그런 변화에 우리의 마음은 너무도 쉽게 흔들렸다. 혹시 그것들이 부정적인 시그널은 아닐지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지와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불확실성'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근원은 바로 이 '불확실성'이라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부부는 현재 '묵직한 불확실성' 안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이 상황을 버텨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 대한 기대와 이 고통을 온전히 나눌 수 있는 서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