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관을 시작하다.
'간단한 거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하면 돼요'
산부인과 원장님이 가벼운 어조로 말씀하셨다.
반대편에서 우리 부부는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믿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체크한 후, 병원에서 받아온 진단서를 첨부하여 정부24에서 신청을 완료했다.(언제나 느끼지만 정부24는 짱이다. 만든 사람 상 줘야 함.)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처리가 완료됐다는 확인서가 필요했다. 주말에 신청을 해 신청자가 많아 오래 걸릴까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월요일 오전쯤 빠르게 처리되었다.
덕분에 월요일 오후부터 시험관 시술을 시작할 수 있었다.
회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처음 보는 조그마한 보냉가방이 보였다.
와이프에게 물어보니 내일부터 맞을 주사를 담아 온 가방이라고 했다.
냉장고를 보니 아주 잔인하게 생긴 주사기가 두 종류 놓여 있었다.
"두 개나 맞아야 하는 거야?"
와이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주사 세트는 약 11일간 맞아야 할 것들로,
난포를 성숙시켜 주고, 난포 터짐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와이프는 병원에서 어떻게 맞는지 방법을 배우며 하나를 맞은 상태였고
앞으로 10일간 직접 배에 주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음 날부터 아침 9시가 되면 와이프는 어김없이 자신의 배에 주사를 놓았다.
바늘이 얇아 그리 아프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가끔 맞는 주사도 싫은데 그걸 매일 맞는 게 분명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와이프는 11일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주사를 놓았고, 중간중간 진행도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들러야만 했다. 거기에 난자 채취일이 가까워졌을 때쯤 과배란 유도 주사까지 하나 추가로 맞게 된다.
그리고 대망의 난자채취일!!!
이 날은 남자의 정자도 채취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나도 함께 병원에 갔다.
아침 일찍 갔음에도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은 분주했고,
많은 사람들이 산부인과를 찾았다.
와이프가 먼저 호명되어 난자채취를 하러 갔고
나도 이후에 불려져 정자채취를 했다.
끝내고 나와 대기하고 있으니 간호사분이 오셔서
난자채취가 끝난 와이프가 쉬고 있는 회복실로 안내해 주셨다.
아직 마취기운이 가시지 않은 와이프가 비몽사몽 누워있었다.
자꾸만 배가 아프다고 했다.
뭔가 짠한 마음이 듦과 동시에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지만,
대화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닌 것 같아 그냥 옆에서 자리를 지켰다.
한 1시간 반 동안 누워있는 와이프 옆에서 그냥 대기를 했고,
수액을 전부 다 맞을 때쯤 간호사분이 오셔서 링거를 제거해 주셨다.
간호사분의 안내에 따라 와이프를 부축해 진료실로 이동했다.
의사 선생님은 총 12개의 난소가 채취됐고,
채취 과정도 양호했다고 말씀 주셨다.
회복을 위해 이온음료를 챙겨 먹고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라고 말씀 주신 후,
앞으로 맞을 13일 치의 주사와 먹는 약 2개, 질정의 효과들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음 주 화요일에 병원에 오면 이식을 진행한다고 말씀하셨다.
들으면서
'뭐가 이렇게 많고 복잡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실을 나와 간호사분께 주사다발을 받고
약국에 가 약과 질정을 받고 나니 실감이 났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점심은 먹어야 했기에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제주도에서 맛있게 먹었던 '은희네 해장국'이 주변에 있다는 게 생각났고,
해장국과 내장탕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나나가 먹고 싶다는 와이프의 말에
마트에 들러 바나나와 삼겹살, 아이스크림을 사서 돌아왔고,
저녁에는 삼겹살과 파김치를 맛나게 구워 함께 먹었다.
그렇게 앞으로도 이전과 같이 주사만 잘 맞으면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다음 날부터 맞게 될 주사는 일명 '돌주사'로 이전에 맞았던 주사랑은 차원이 다른 녀석이었다.
이 녀석은 주사를 하고 나면 맞은 부위가 딱딱해짐과 동시에 고통을 수반하는 끔찍한 녀석이었다.
일요일 아침.
주사 맞을 시간이 되어 나는 와이프를 깨웠고 와이프는 주섬주섬 일어나 주사 맞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싸했다. 와이프는 자기 주사 맞는데 너는 누워만 있냐며 소릴 질렀다.
"주사 맞는다고 말을 하지~"
라며 몸을 일으켰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와이프는 주사 맞는 게 쉬운 건 줄 아냐며, 내가 회사 가고 혼자 맞고 있으면 얼마나 기분이 그런 줄 아냐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조차도 가끔 주사 맞는 게 끔찍한데 매일매일 주사를 두 방씩 맞아온 와이프 마음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미안함이 몰려왔다. 와이프의 '생각보다 괜찮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신뢰한 나의 태도가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음부터 그런 마음이 들 때면 바로바로 말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자기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말을 해야 하냐며 더 화를 냈고, 우리 집은 일요일 아침부터 분위기가 상당히 안 좋아졌다.
일단 주사는 맞아야 했기에 와이프는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와이프 앞에서 나는 더 작아졌다.
주사를 다 놓고 한참 아파하던 와이프는 내게 '내가 그렇게 짜증을 내?'라고 물었다.
어느 순간부터 핀잔만 주는 와이프에게 내가 "왜 그렇게 짜증을 내??"라는 말을 몇 번 했던 게 마음에 남은 듯했다.
나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조금 짜증을 내긴 했지..."
와이프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야기했다.
"지금 맞는 것들이 다 호르몬에 영향을 줘서 그런 것 같아. 다른 부부들도 많이들 싸운데. 미안해..."
어쩐지 평소에는 분명 넘어가줬을 일들을 뭐라고 하는 게 조금 이상했는데, 호르몬의 영향이었다니...
우리는 서로 이런저런 마음을 공유하고, 소고기가 먹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씻고 장을 보러 나갔다.
돌아온 나는 열심히 소고기를 구웠고,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시험관에 대해 이것저것 더 찾아보니 우리는 이제 시작이라고 한다.
아직 이식도 하지 않았고,
이식한 배아가 제대로 착상하지 못하면 또 이 과정을 처음부터 반복해야 하고,
만약 임신이 되더라도 그 무섭다는 돌주사를 임신 12주 차까지 맞아야 한다.
그 와중에 비용은 비용대로,
주사 맞고 병원 가고 하는 시간은 시간대로 써야 한다.
정부에서는 비용의 일부를 9차까지 지원을 해주는데, 9차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이 되지 않아 그 후부터는 사비로 할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순간,
"이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과
"이 국가는 정말로 출산율을 올리고 싶은 생각은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고
종국에는
부디 한 번의 시도에 소중한 아이가 생기게 해달라고 비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