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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fka Apr 17. 2024

‘ㄷ’자 책상 배치와 ‘11’자 책상 배치

  요즘에는 배움중심 수업에 대한 관심 자체가 많이 줄어든듯 보이지만, 여전히 배움중심 수업처럼 학생 중심 수업을 하려면 책상을 'ㄷ'자로 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예전에 적어 두었던 글 가운데 일부를 편집해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앞 부분 생략)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꼬마 평론가’수업을 진행한 학급은 짝 없이 모두 앞을 보는, ‘11’자 형태로 책상을 배치했다. 이런 책상 배치는 과거에는 흔했으나 요즘에는 초등에서 잘 보이지 않는 형태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왜 책상을 ‘11’자 형태로 배치했을까? 아니, 왜 요즘 많이 보이는 ‘ㄷ’자 형태로 책상을 배치하지 않았을까? 난 이 부분에 이 수업의 탁월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아래에서는 선생님께서 책상을 ‘11’자로 배치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 보려고 한다. 


  나는 선생님께서 책상을 ‘11’자로 배치한 이유가 다음 세 가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모든 수업, 모든 활동에 학생 사이의 상호작용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업에는 숙고가 필요한 활동과 학생 사이의 상호작용이 필요한 활동이 있다. 학생 사이의 상호작용은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그것을 내면화한 다음 자기 생각을 친구들과 나누었을 때 의미가 있다. 무턱대고 서로 의견을 나누기만 한다고 해서 의미 있는 상호작용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는 준비되지 않은 회의에 참석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갑자기 참석하라고 한 회의에서 의견을 내보라고 한들, 주제에 대한 전문성과 이해관계가 없다면 성인도 의미 있는 의견을 제시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시간만 보내거나 어색한 시간을 관련 없는 잡담으로 때울지도 모른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주제와 관련해 필요한 지식과 적절한 고민이 없다면 서로 의견을 나누어보라고 해도 수업과 상관없는 이야기만 나눌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모든 수업 활동에서 책상을‘ㄷ’자로 배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숙고가 필요한 상황인지 학생 사이에 상호작용이 필요한 상황인지 면밀히 살피고 그에 맞게 책상 배치를 바꾸어야 수업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둘째, ‘ㄷ’자 책상 배치가 학생들의 수업 집중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인지 심리학자와 뇌 과학자가 학습에 대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있다. 작동 기억(Working memory)에 대한 내용이다. 인지 심리학자와 뇌 과학자들에 따르면 누구에게나 제한된 용량의 작동 기억이 있고, 작동 기억의 용량을 벗어난 자극은 처리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학습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려면 작동 기억을 차지하는 부가 자극을 줄이고 작동 기억을 온전히 학습에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책상을 ‘ㄷ’자로 배치하면 가운데 공간을 비워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이 더 가깝게 앉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학생사이의 자극을 더욱 강화해 학습자가 작동 기억을 학습에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학급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다투는 사람이 짝이고, 성향이 다른 짝의 이해 안되는 행동으로 인해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셋째, ‘ㄷ’자 책상 배치는 공간 낭비가 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ㄷ’자 책상 배치를 해보면 불편한 것이 이만저만 아니다. 특히나 덩치가 큰 고학년이나 학급당 학생 수가 많은 학급은 더욱 그렇다. 아이들이 너무 좁은 책상 공간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기 일쑤고 수업 중에 급하게 화장실에 가거나 사물함에 물건을 가지러 가기라도 하려면 옆에 있는 친구들을 모두 헤치고 가야 한다. 


  그나마 옷이 얇은 여름에는 조금 낫다. 겨울철에는 두꺼운 겉옷을 의자에 걸자니 그렇지 않아도 좁은 자리가 더욱 좁아지게 되고, 옷 때문에 통행은 아예 엄두도 못 내게 된다. 그렇다고 교실에 옷걸이를 두면 교실에 여유 공간이 아예 사라지게 되고 벽 쪽 선반은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영상 속 학급을 보면 학생 수가 제법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책상 사이의 공간이 넓지 않은데도 벽 쪽에 공간이 거의 없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화면에는 안 보이지만 아마도 교실 뒤쪽에도 여유 공간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반에 대한 맥락 없이 배움중심 수업 또는 배움의 공동체 수업 방법을 교조적으로 적용해 책상을 ‘ㄷ’자 형태로 배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같은 수업이라도 환경이 어떻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수업자가 평소 어떤 스타일의 수업을 선호하는지, 우리 반 아이들의 성향은 어떤지, 해당 차시는 어떤 배치가 어울리는지를 고려해 책상을 배치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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