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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fka Aug 23. 2024

5-O반 수업일지 8/22 (1)

  나는 올해 5~6학년 체육을 가르치고 있다. 총 9반을 가르치는데, 그 가운데 5-O 반은 가장 수업하기 힘든 반이다. 흔히 말하는 선생님 말을 안 타는 아이들이 4명이나 있다. 이 아이들은 크게 웃거나 떠들고 장난을 치면서 수업을 방해하고, 교사가 문제 행동을 지적하면 선생님과 말다툼을 하려고 한다. 이런 아이가 반에 한 명만 있어도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운데 4명이나 있다 보니  5-O 반은 수업도, 생활 지도도 마음대로로 안되는 경우가 많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수업 대형으로 자리에 바르게 앉으세요."


  수업 시간에 맞추어 체육관으로 들어오는 5-O 반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지난번에 이야기 한 것처럼 다목적실 공사 때문에 다른 반이랑 체육관을 나눠 써야 돼서 떨어져 앉으면 선생님 이야기가 잘 안들려. 조금 밀착해서 앉자. 밀착~ 밀착!"


  대부분의 아이가 선생님의 지시를 잘 따르며 정해진 자리에 앉는 와중에 동훈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야! 여기 공 있어 공!"


  동훈이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피클볼 공을 보더니 큰소리로 공이 있다고 외치고는 성화에게 발로 차는 시늉을 한다. 성화는 재미 있는 게 생겼다는 듯 소리를 지르며 동훈이에게 뛰어가서 같이 장난을 친다. 뒤이어 철준이도 합류한다. 


 "얘들아 자리에 앉아. 동훈이, 성화, 철준이 자리에 앉으세요."


  동훈이와 성화, 철준이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했지만 세 아이는 마치 선생님 말이 안 들리는 것처럼 계속 장난을 친다. 학년 초 였다면 화가 났을 텐데 이제는 화가 나지도 않는다. 세 아이들 때문에 질서를 잘 지키는 나머지 아이들을 계속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서 세 아이를 떨어뜨려 놓기로 했다. 


  학년 초에는 이 아이들이 잘 못 했을 때마다 잘못을 지적하고 지도하려고 했는데,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동훈이와 성화, 철준, 그리고 이번 글에는 나오지 않는 예환이는 잘못을 지적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고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짜증을 내고 말싸움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 지시를 잘 따르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피해 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수업 시간에는 가능한 이 아이들과 오래 이야기하지 않는 전략을 주로 택한다 . 


"아! 아무것도 안 했어요!"


"왜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그래요!, 왜 차별 대우 해요!"


"정우도 했어요. 왜 저한테만 그래요. 정우도 했다고요!"


"뭔 소리야,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너도 했잖아, 선생님 정우도 했는데 안 나와요~"


  세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분리하기 위해 적당한 거리의 벽에 한 명씩 세워 놓았다. 너무 가까운 곳에 세워두면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자꾸 말을 걸거나 수업 방해 행동을 하고, 너무 먼 곳에 세워두면 자기들 끼리 신나게 장난을 치거나 갑자기 체육관 밖으로 뛰어 나가서 잡으러 가야 할 수도 있다. 


  벽에 서 있으라고 하자 역시나 늘 하던 대로 항의를 한다.  동훈이와 성화, 철준이가 잘 못했을 때 하는 말은 늘 비슷하다. 세 아이는 혼나려고 할 때마다 자기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억울하다고 하고, 차별한다고 하고, 상관도 없는 다른 아이도 했다며 웃고 장난친다


  이 역시 여러 번 있던 일이고 예상했던 일이라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서로 더 떨어지라고만 했다. 어찌 보면 조금 비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현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다른 아이들 줄 서는데 장난치고 있었다고 지적하면 아니라고 하거나 몰랐다고 하면서 말 싸움을 하게 될 것이고, 정우는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왜 정우를 걸고 넘어지냐고 하면 정우도 했다고 우길 게 뻔하기 때문이다. 


  세 아이를 다른 아이들로부터 분리 시켜 두는 데에도 벌써 시간이 꽤 지나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세 아이는 벽에 서 있으면서도 여전히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장난을 친다. 하나하나 지적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그러면 또 나머지 아이들이 기다려야 하니까 심한 경우만 떨어지라고 손짓과 눈빛으로 경고를 하고 애써 무시하며 수업을 진행한다. 반 아이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지 동훈이와 성화, 철준이가 수업 방해 행동을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동훈이와 성화, 철준이를 계속 세워둘 수만은 없어서 다른 아이들이 활동하는 사이에 셋에게 다가가 무엇을 잘 못 했는지 물었다.


  동훈이와 성화는 빨리 다른 아이들과 체육 활동을 하고 싶었는지 장난을 쳤다고  앞으로는 안 하겠다고 한다. 깊은 고민 없이 그냥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 정도만 해도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어 또 수업 방해 행동을 하면 교실로 보낼거라고 경고를 한뒤 활동에 참여하라고 했다.


  철준이는 불만이 가득한 말투로 자기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한다. 진짜로 철준이는 공을 안 차고 그 옆에 서 있기만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공을 직접 찻는지 안 찻는지가 아니다. 그래서 자리에 안 앉고 동훈이, 성화랑 장난을 치고 있던 게 문제라고 지적하자 철준이는 앉아야 되는 줄 몰랐다고 한다. 이쯤 부터는 나도 짜증이 났지만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니가 1~2학년이면 모르겠지만 5학년이나 됐으면서 수업 시간에 자리에 앉아야 되는 걸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했다. 철준이는 머리가 나빠 몰랐다면서 자기 IQ가 70이라고 빈정 거린다. 


  동훈이와 성화, 철준이, 그리고 이 번 글에는 안 나오는 예환이와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그래서 수업시간에는 가능한 말싸움을 피하려고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동훈이와, 성화, 철준이, 예환이는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대화에서도 언 듯 언 듯 옅보이듯이 가정 문제와 피해 의식도 있다. 담임이 아닌 탓에(물론 요즘에는 담임이어도 자세한 가정 사정을 알기 어렵지만) 세세한 것 까지는 알 수 없지만 부모님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다는 동훈이의 말에서, "엄마 죽었어요."라고 하는 성화의 말에서, 담임 선생님이 스쳐 지나가듯 이야기 하시는 철준이, 예환이 부모님과의 상담 사례에서 네 아이들의 가정 상황이 평범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네 아이는 가정에서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욕설과 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을 수도 있고, 부모로 부터 충분한 교육적 자극을 받지 못해 학교에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좌절의 경험 일수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를 교사 한두 명이서 떠 맡아야 한다니. 나야 일주일에 몇시간 안 되지만 일 년 내내 같이 있어야 하는 같은 반 아이들이나 담임 선생님은 어떨까? 이 아이들과 드잡이를 하고 나면 마치 조금 전에 다툰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 거리고 숨이 가빠지는데, 늘 이런 상태에 있어야 하는 반 아이들과 담임 선생님의 정신 건강은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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