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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싸이트 kimsight Mar 30. 2024

일을 잘하고 싶은데 퇴사하고 싶어요.

일을 잘하고 싶은데 퇴사하고 싶다. 이상한 일이다. 논리적으로 한 가지만 해야 말이 된다. 근데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언제 퇴사하고 싶은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바로 어제였기 때문이다. 어제 어떤 순간에 회사를 뛰쳐나가고 싶었을까? 


회사 높으신 분들과 점심을 먹고 커피 타임을 가지고 있던 때였다. 타팀 기획자가 쏘아올린 "A 플랫폼 리텐션은 괜찮나요?"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플랫폼 근황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수치심이 훅 올라왔다. 왜냐면 우리 플랫폼 리텐션이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몰랐기 때문이다. 스스로 부끄러웠다. 실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들여다보지 않았고, 사실 봐도 그래프가 내려가면 안 좋은거고 올라가면 좋은 것 아닌가 정도의 무지만 갖고 있다.  


회사가 컨플루언스와 지라를 새로 도입한 지 이제 막 일주일이 되었다. 이는 단연 사내 소소한 화젯거리가 되었고,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많이 써보신 경력자분들은 이 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회의록이나 올리고 백로그에 아이디어를 조금씩 넣어두던 나는 이들이 뭐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관심 있게 듣긴 했지만 능숙하고 멋진 경력자들 사이에 능력 없는 촌닭이 된 것 같았다. 


qa와 배포를 하루 만에 진행했다. 어제는 무려 금요일이었다. 보통 회사는 주말에 대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기능이나 서비스 배포는 대처할 수 있는 근무일을 남겨두고 하는데, 이러저러한 회사 사정으로 그렇게 됐다. 사수와 개발자들과 함께 qa를 마치고 배포를 하였는데, 싸늘했다. 비수가 날아와 심장에 꽂히는 것 같았다. 내가 확인을 안 한 부분이 생각났다. 확인해보니 역시나 문제가 있었다. 간단하게 수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그날 우리는 9시까지 야근을 했고 그래도 수정하지 못해 그대로 두고 다음주에 더 얘기해보기로 했다. 개발자는 짜증이 났는지 슬랙에 태그를 사수에게만 하면서 말을 했다. 나는 처음에 발견하지 못한 것이 죄송했다. 그리고 무시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모두 금요일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었다. 회사는 정말 내가 얼마나 별로이고 무능한지 매일매일 확인 받는 곳 같았다. 그리고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사수는 왜 나에게 통계에 대한 걸 안 가르쳐 주는 거지? 이렇게 가다 간 제대로 된 기획자로 성장하기 어려울 거 같아.', '요즘 컨플이랑 지라 못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 너무 오래되고 촌스러운 거 같아.', '내가 한 기획도 아닌데 같이 야근해서 일했구만 그 개발자는 그렇게 행동해도 되는 거야? 내가 미리 말했더라면 수정하다가 지금처럼 수정도 못하고 제시간에 배포도 못 했을텐데.' 하는 회사 탓, 환경 탓, 내 탓, 사람 탓이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그리고 생각했다. '퇴사하고 싶다고.' 


집에 와서 펑펑 울었다. 일을 못하는 거 같아 속상하다고 엉엉 울었더니 이를 지켜보시던 엄마가 오셔서 갑자기 5만원을 주셨다.(?) 눈물이 그쳤다. (어이가 없어 그쳤던 거긴 한데, 금융 치료는 여러모로 효과적인 듯하다.)



진정하고 다시 생각했다. '나는 내가 못하는 걸 잘 못 견디는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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