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분 달리기 마약 중독

by 김작가

연애부터 함께한 십수 년 동안 이 사람이 새벽에 일어나 무언가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던 사람이 새벽에 일어나 동네를 세 바퀴씩 뛰고 온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해도 뜨기 전에 컴컴한 어둠 속을 그냥 달리러 나가는 것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어느 날 궁금해졌다.

그즈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다이어트의 욕구가 그 호기심을 부추겼을 것이다.

한번 같이 나가봤다. 어둠 속의 아파트를 우린 그렇게 함께 달렸다.

갑자기 달려대니 난리가 난 심장덕에 헉헉거리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 15분 마약의 엄청난 힘을... 달리기를 하기 15분 전과 딱 15분 후의 나의 상태는 정말 달랐다.


신랑이 나가고 침대나 소파에 누워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금방 다 뛰었다고 삐삐삐삐 도어록 소리를 울려대며 들어왔었다. 릴스를 보고 남의 피드를 몇 개 읽다 보면 끝나는 그 짧은 시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하루하루 더 할수록 놀라웠다.


그렇게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네 세 바퀴였다.

15분쯤 달리고 집에 돌아오면 매일 아침은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차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 새벽에 나를 위해 운동하고 돌아오는 뽕에 취하기도 했고 출근 전에 어떻게 달리기를 하고 오냐고 칭찬을 해주는 직장동료들의 칭찬에 정말 대단한 K-워킹맘이 된 것 같았다.


작년 6월 내 생일기념으로 워치를 사서 장비를 늘린 이후로는 더 신이 나게 달렸다.

물론 매일이 가벼운 발걸음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달력에 하나하나 기록을 찍어가는 보람으로 또 달렸다.

그렇게 4개월쯤 동네 세네 바퀴 달리기를 하던 신랑과 나는 여름휴가로 떠난 부산에서 냅다 10km 달려기에 도전한다. 그전까지 최고의 장거리는 5km였다. 워치에 신기록을 세우고 싶어 어느 주말아침 헉헉대며 간신히 달렸었는데 매일 아파트를 돌던 우리에게 부산 해운대바다의 멋진 풍광은 그것만으로도 달릴 맛이 났고, 새벽 바닷바람은 우리를 흥분하게 하기 충분했다. 그 여름 동트기 전 보랏빛 하늘아래 우리 둘만의 10km 마라톤이 시작되었다. 처음 가보는 길, 지도로 충분히 갈 만한지 살펴보고 해운대 마린시티에 잡았던 숙소에서 광안리 해변까지 찍고 오면 딱 10km 코스가 완벽해 보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10km는 생각보다 무지무지무지무지 길었다. 광안리 해수욕장까지 어찌어찌 가는 길에는 계속해서 이 길을 다시 어떻게 돌아가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정 안되면 택시 타고 가야지 하는 맘으로 꾸역꾸역 뛰어갔다. 5km 터닝 구간에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하면서도 집까지 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1km, 1km 그렇게 조금씩 10km에 가까워지면서 그냥 달렸다. 다리와 머리가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힘들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만하고 싶다 하는 머리의 메시지를 무시하는 듯 그냥 다리는 계속 움직였다 앞서가는 신랑을 따라. 앞서가던 신랑이 뒤를 돌아보며 달려와 나를 안아주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축축하고 따뜻한 우리는 뜨겁게 안았다. 잘했다며 고생했다고 우리는 서로 뜨겁게 축하했다. 그 이후로 달라진 게 있다면 나는 한 시간을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전에 간신히 달렸던 5km가 이제 30분만 뛰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바뀌었고, 동네 세 바퀴는 준비운동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신체적으로 헉헉대는 것은 여전했지만 마음속의 자신감만큼은 아주 호기로운 상태가 되었다.


매일 달리기를 하다가 보면 어떤 날 내 안의 엄청난 에너지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어딘가에 얼른 적어놓고 싶은 고무적인, 감성적인, 미래지향적인, 회고적인 다양한 생각과 기분이 떠오른다. 그 느낌에 취해 그 시간이 주는 위로와 응원에 취해 계속 달리기를 하게 되는 것 같다.


기록을 하다 보니 지난 1년간 나는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오늘 아침은 매일 5km 한 달간 뛰어보기를 시작하는 첫날이었는데 아주 가벼운 몸과 마음의 상태로 뛰고 왔다. 1년 전 나는 상상도 못 했을 5km를 이런 느낌으로 뛰고 있다니 30일 뒤에 나는 어떨지, 3개월 뒤의 나는 어떨지, 내년의 나는 어떨지 기대가 된다.

처음 신랑이 하프마라톤을 나가고 싶다고 해서 그건 안된다 불가능하다 생각했었는데 대회를 기웃거리며 찾아보는 나를 보니 나를 가두는 건 나 스스로 할 수 없다 여기는 마음뿐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 삶에 더 큰 변화를 기대하지 못하는 나 스스로의 마음에 나의 오늘도, 내일도 갇혀있는 건 아닌지...

달리기를 하며 기록해 보겠다. 나의 성장 기록을, 눈부시게 성장할 나의 발전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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