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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back Life

'여행을위한 여행'

by PlanBlab

더비에서의 삶은 정말 천천히 흘러갔다. 요양원에서의 근무시간은 짧게는 5시간 길게는 8시간 일을한다. 다양한 쉬프트가있어 시간대 별로 다른 일을 하지만 주된 업무는 거주자들의 밥과 티타임을 챙겨주고, 씻겨주고, 외출시켜주며, 때론 함께 드라이브를 떠난다. 대부분의 거주자들이 나이많은 호주원주민 '에보리진'이다. 그래서 일 자체가 봉사활동이라는 생각이 많이든다. 마치 국경없는 의사회의 일원처럼.. 다만 보수가 좋다.


한달에 보통 5~6천불의 소득이 생기면서 삶은 안정됐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여기서 일을할수 있는 6개월동안 돈을 모아 가족들과 여행을 하자'

동기가 없으면 돈을 모으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먼저 가족들의 비행키 티켓을 구매했다. 그리고 차근차근 6개월이란 시간동안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돈이 모일때쯤 지출할 것들이 생긴다. 1월에는 백만원짜리드론이 바다로날아가버렷다..바로다시샀다 2월에는 엄마의 생신 이다. 3월에는 아빠가 치과치료를 받으셨다. 4월에는 누나가 급하게 돈이 필요하단다. 5월은 아빠생신..어버이날.. 그렇게 모일만할때 마다 돈이 빠져나갓다.

가족여행은 6월 인데, 잔고는 2천불이 채안된다.

요양원 주니퍼에서의 근무기간도 1달밖에안남고 쉬프트도 예전만큼 못받았다. 정직원들이 휴가에서 돌아오면서 내게 주어진 근무시간은 주 20시간이 채 되지않았기에 소득이 예전만못하다. 그래서 다시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호텔, 바, 수영장, 수퍼마켓등 나에게 빈시간을 채워야만했다. 그러던 중 호텔에서 연락이 왔다. '하우스키퍼'와 '바청소부'를 구한다고한다.

4월중순이 지나면서 이곳의 날씨는 습도가 사라지고 뜨거운 햇빛만 남았다. 남반구의 가을이 시작되면서 이곳은 '건기' 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낮에도 뜨겁지만 걸어다닐만한 날씨가 되자 이곳은 성수기 준비를 위해 분주해 지기 시작한다.

'근데 여기가 대체 뭐길래 성수기지?'


이러한 이유로 일자리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나에게도 세컨잡이 생겼다. 새벽 5시부터 바청소 2시간 아침 8시부터 호텔 방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저녁엔 호텔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닦기도 하였다. 때에 맞춰 요양원은 쉬프트를 감축하기 시작했고, 요양원에서의 나의 근무도 일주일에 2번정도. 어찌보면 호텔업무가 주가되기 시작하고 요양원근무가 세컨잡으로..호텔 근무는 시급이 23.7불로 요양원에 비해 40%정도 적다. 하지만 근무시간이 엄청났다.

요양원을 포함해 하루 16시간까지 일을하기 시작했다. 밥먹을 시간을 건너뛰어야 할정도로 일을 해야했고, 나의 워킹홀리데이에 정점을 찍기 시작했다. 주 2천불, 2500불, 주 3천불! 40일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했지만, 내 스스로의 도전에 놀라고있었다. 물론 근 2달간 서핑은 단지 꿈이었다.

여행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호텔뿐만아니라, 주유소 수퍼에도 그동안 볼수 없었던 낯선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런곳엔 대체 왜 오는것일까?' 라는 의문에 여기가 대체 뭔데 성수기냐고 매니져한테 물어보니 'Outback season'이란다. 이곳 Derby가 Outback을 시작하는 거점 도시라고...

아웃백 이라는 것은 보통 한달이 넘는 호주의 홀리데이 기간동안 근로자들이 오지를 찾아 여행한다. 단순한 '교외'가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매우 드문 '거친자연'속으로.

금광.jpg 호주여행에 드론은 필수다.
내가 20대에 그렇게 꿈꿔왔던 아웃백이 이런거였다고?!

내 삶과, 꿈꿔 왔던 여행의 개연성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미 나는 20대의 꿈을 이루고 있었다. 다만 이곳엔 내가 생각했던 아웃백의 낭만보다는, 인간에게 너무나 거칠었던 자연으로 기억된다.

대 자연에서는 낭만을 찾기 힘들다. 그저 생존에 대한 생각뿐, 그 생존에 대한 각성과 잊지못할 장소들을 찾아다니는게 내 아웃백의 묘미였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더비도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미용사가 시즌장사를 하러 들어오고, 서커스 유랑단 같은 놀이 공원이 들어왔다. 나의 일은 점점더 바빠지지기 시작했고, 목표했던 여행자금 1만불을 모았다. 그리고 어느덧 6개월간 정들었던 요양원과 집을 떠나야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더비하우스.jpg 동료들이 준 롤링페이퍼와 즉석복권 3장

6개월간 나의 빈시간을들 채우기 위해 짐들이 좀 늘어났다. 내 로망을 채워줄 오래된 어쿠스틱 기타 한개와 맨 눈으로도 보이는 밤하늘의 은하수를 더 자세히 보기위해 구매한 천체 망원경, 타들어가는 햇볕덕에 한번도 쓰이지 않은 골프클럽들과 골브백, 60리터백팩과 맞바꾼 오래된 여행트렁크, 그리고 호주여행의 필수품인 드론까지.

모든짐들을 정리하고 마지막 쉬프트를 하러 요양원으로 출근했다. 마지막 쉬프트는 그동한 해왓던 'Carer' 가 아닌 'Cleaner' 였다. 한번도 해본적 없던 쉬프트에 의아했지만, 일을 시작하고 나니 왜 그랬는지 알게됐다.

담당하는 환자뿐아니라, 모든곳을 청소하면서 그동안 알고지냈던 모든 환자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맨날 밥그릇 집어던지는 Betty 할머니와 장난삼아 항상 Holy moly 라고 불렀던 Moly 할머니. 맨날 시큰둥하게 명령만하는 Albert 할아버지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Tom 아져씨. 담배줄 시간만되면 내앞에 나타나 말없이 기다리던 Bate할아버지, 항상 정중하고 사려깊었던 Peter할아버지까지. 잠시나마 정들었던 모든곳에 인사를 나누고 나니 떠남이 실감이 난다.


메르시.jpg 아직도 소식을 묻는 호주베프 JIJI 와 간호사 Mercy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더비의 따뜻함은, 인간을 전혀 배려하지않던 자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계에 대한 실증이 생길때마다 떠올리는 내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리빙더비.jpg 더비를 떠난다

2016년 5월 30일 더비에 정착한지 6개월이 찼을때, 또다른 여정을 위해 출발하였다. 다음 목적지는 1800km떨어진 국제공항이 있는호주 Northen Territory 의 주도 Dawin 이다. 지난 로드트립에 비해 비교적 짧은 거리이며, 6월 15일 가족들과 인도네시아 Bali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진짜 아웃백을 즐길수 있는 '15일' 의 시간이 주어졌다. 내가 지나쳐 가는 모든 길들이 세계 3대 오지의 하나인 Kymberly 지역을 관통한다.


여행은 항상 낯설다. 그 낯선것이 주는 몸의 긴장상태가 내 깊숙히 묻혀 나올일 없었던 감각들을 깨운다. 그 감각들은 명확하게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호주에, 그곳에서 가장 낯선곳으로 향했던 내 여정의 시작은 여행가로서의 나를 시험하는데 최고의 환경이었고, 평생 추억할만한 그리고 꼭 한번 다시 가야할 곳으로 만들어준 Derby. 내 여행의 1막 1장을 지나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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