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간의 짐을 차근차근 싣느라 출발이 늦었다. 준비가 다된 건 오후 2시. 해가지는 7시까지 5시간 정도의 여유밖에 없다. 아니, 여유라기보단 떠나야 한다는 독촉의 시간들. 6/8일 오후 4시 Dawin to Bali(DPS) 비행기라 대략 10일간의 로드트립의 시간이 남아있다. 늦은 출발이라 멀리 가진 못했다. 280km 떨어진 옆 마을 Fitzroy crossing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해가 지고 있었고, 차에서 자는 건 너무 힘들어 캠핑할 수 있는 적당한 위치를 찾아 숲 속으로 들어갔다.
차로 해와 바람을 막고 그 옆에 조그만 텐트 하나, 그리고 식사 준비. 혼자 다니는 여행은 매우 간소하다. 1분이면 만들 수 있는 텐트와 휴대용 버너 하나, 밥을 지을 수 있는 냄비 하나와 스팸과 참치캔 이면 하루가 저물어간다.
'피츠로이 크로싱'은 그동안 살았던 더비보다 더한 시골이고 예전 KBS '남자의 자격'에서도 소개된 아주 심각한 오지마을 중 하나이다.
아침해를 등지고 조금 늦게 일어나려 했으나, 첫 캠핑부터 너무 자연 속에서 시작하니 아침 먹으러 온 왈라비들(작은 캥거루)의 뛰는 소리에 놀래서 깼다. '이게 무슨 소리야..'
숨은 그림찾기
절구 찍는 소리에 놀래서 깨니 왈라비들이 텐트 앞에 까지 와있었다. 겁 많은 친구들이라 문을 열고 나오자 고새 후다닥 도망쳐서 나를 쳐다본다. 별거 아니지만 모든 것이 낯선 환경. 이게 아웃백인가..
다음 목적지는 290km 떨어진 Halls creek. 왈라비들 덕분에 조금 이른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일전에도 얘기했지만, 여기는 열대 지역으로 건기(dry season)라 할지라도 낮 기온이 40도 이상 오르는 무시무시한 곳이기에 오전의 드라이브가 피로감을 덜 하다.
금맥을 찾아서
'Halls Creek' 이란 지역은 금맥과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현재는 금값의 시세 때문인지 대부분 폐광되어, 일반인들이 금속탐지기로 금을 찾아다니는 명소로 유명하다. 이곳을 찾게 된 계기도 요양원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의 2냥쯤 돼 보이는 금팔찌가 여기서 금속탐지기를 갖고 노는 남편의 취미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유였다. 물론 나는 금속탐지기도 없고 이곳에 체류할 여유도 없었지만, 왠지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워서 반나절 동안 이곳을 샅샅이 훑고 왔다.
땅을 파고 돌아다니기는 너무 힘들 거 같아 드론을 띄어 강을 찾아보았다. 2~3km 떨어진 곳에서 강의 흔적이 보였지만, 무작정 들어가기엔 길이 없어 돌아오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일전에 이런 곳을 차로 달리다 뻘 지역에 갇혀 자동차 라디에이터가 망가진 경험이 있기에.
서북호주 세계 3대오지
대자연이 가득한 길이 었다. 피츠로이 크로싱부터 홀스 크릭, 그리고 쿠넌어라 까지 가는 길목은 마주오는 차를 만나기도 힘들었고, 도로는 로드킬 된 동물들로 인해 마치 전쟁터 같은 느낌이었다. (도로엔 수많은 왈라비와, 소 도마뱀 등의 사체들이 즐비했다.)
계획한 10일 중 이틀이 지났고, 현재 2000km의 목표 중 500km를 지나가고 있다.
가는 길목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이 거의 없고 (백패커 하우스나 슈퍼마켓 같은 곳이 없다.),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들이 군데군데 있어 그곳에 들러 하룻밤을 지냈다.
고속도로 휴게소
고속도로 휴게소라 하여, 우리나라처럼 식당이나 화장실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땅을 좀 넓혀놓고 차를 세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게 다다. 샤워나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없기에 물은 항상 10L 이상 챙겨 다녀야 한다.
하룻밤을 지내고 출발하려니 오늘은 소가 풀을 뜯으러 왔더라..
아웃백스테이크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이곳에 내가 부자연스러웠는지 자꾸 쳐다보며 아침 먹는 내내 긴장감을 주었다.
오늘은 서호주의 종착 마을 쿠넌어라 까지 간다.
많은 차에 이런 낙서가..
800km를 지나 도착한 서호주의 마지막 마을인 쿠넌어라. 도착하자마자 본 것들은 낙서되어 있는 차들이었다.
뭔가 할렘 같기도 했고, 외지인들을 반기지 않는 마을 같아 선뜻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3일간 샤워를 하지 못해, 온몸에선 자연냄새가 진동을 했고(?) 백패커 하우스에 들러 하루 쉬고 가려했지만, 왠지 자고 일어나면 내차도 저렇게 낙서될 거 같아, 바로 마트로 향했다.
여행자들의 거점 Coles
그간 소비했던 식량들을 다시 채우고, 오늘은 어디서 잘까를 잠시 고민한 후 바로 출발. 조금은 지긋지긋했던 서호주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쿠넌어라를 1시간 정도만 지나면 주경계이니, 오늘은 북호주에서 잠을 청하기로.
카라반파크
서호주를 지나 북호주에서 100km 정도 지나니 조그만 관광 마을들이 나온다. 보통 마을에는 카라반 파크를 1개씩은 운영하고 있고, 여행자들이 조금은 편하게 샤워하고 지낼 수 있는 곳이다. 건기라지만 뜨거운 열대지역을 3일 동안 운전했기에 샤워에 대한 욕구는 아주 극대화되어있었다. 대략 2만 원 정도를 내고 하루를 지내는 이런 카라반 파크에서의 하루는 정말 큰 힐링이다.
목적지의 절반 정도 도착했다. 아직 볼 것도 많고 들를 곳도 많다. 그리고 그 목적지 다음은 파라다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