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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Apr 15. 2024

청춘이 지나간다는 것

콜라가 일깨워준 내 청춘

콜라를 마실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이제껏 별 탈없이 살아왔던 몸뚱이가 서른 다섯 생일을 기점으로 반항이라도 하듯 갑자기 카페인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젊은 청춘이 아니라는 암시인 것일까. 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두 잔 이상 마시던 커피를 오늘부터 마실 수 없게 되었다. 내 몸이 거부한 것은 커피뿐만이 아니었다. 홍차, 녹차, 콜라까지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가 그렇게 많았다는 것을 서른다섯이 돼서야 알았다. 처음에는 부정도 해봤다. 그까짓 카페인 따위 이겨낼 수 있다고 배짱도 부려봤지만 내 몸은 정직 헸다. 한 모금 마신 콜라에도 밤에 잠이 들지 못했다. 그 음료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몰랐다면 좋았을 것을. 땀을 잔뜩 흘린 운동 후 마시는 얼음탄 콜라의 맛과 주말에 넷플을보며먹는치킨과 콜라의 맛을,


 나는 너무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이제 못하게 되었다. 세상이 무너질 정도의 슬픔은 아니었지만 인생의 큰 즐거움이 사라져 버린 슬픔은 꽤 진했다. 어제까지의 나는 분명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늘의 나는 피자와 함께 콜라를 마시는 동료들 사이에서 홀로 사이다를 주문하고 있다. 피자에 사이다는 아무래도 옳지 않다. 같은 탄산이지만 피자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개운함이 사이다에는 없다.

서른다섯은 내게 콜라만 뺏어간 것이 아니었다. 할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청년 대상 이자할인도 받을 수 없었고 나이제한 모임도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직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생겼다. 어느새 중견이 되어버려 새 회사에서도 부담스러운 위치에 오게 된 것이다. 그것만 해도 억울한데 나이에 맞는 책임과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사방에서 묻는 것 같았다. 사회적 책임과는 반대로 내 몸은 전에 비해 말을 듣지 않는다. 며칠째 계속되는 야근에는 결국 탈이나 주말 내내 집에 누워있어야 했고 점심에 먹은 짜장면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더부룩한 속을 쑥 내려가게 할 콜라가 필요한데 이제 먹을 수 없다. 콜라의 쌉싸름하고 톡 쏘는 달콤함을 애초에 몰랐다면 덜 슬펐을까. 콜라를 대신할 음료를 찾기 시작했다. 루이보스, 민트, 카모마일 같은 차를 잔뜩 구매했다. 차가운 얼음물에 우려낸 차는 콜라와는 다른 은은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도 콜라를 찾던 시절에 비해 씀씀이가 나아져 종류별로 다양한 차를 맛볼 수 있었다. 건강에는 훨씬 나을 거라고 위안하며 스쿼시를 치고 시원한 콜라를 들이켜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나이 듦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콜라가 내게 일깨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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