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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Oct 07. 2021

스페인의 축제, 핼러윈

Día de todos Los Santos


 며칠 전부터 스페인 친구들이 만나기만 하면 핼러윈 분장 이야기를 한다. 스페인어로는 핼러윈을 Día de todos Los Santos(모든 성인 대축일)라고 하는데 10월 31일 밤부터 11월 1일 아침까지 돌아가신 가톨릭 성인들을 기억하는 날이다. 



 멕시코에서는 이날 가톨릭 성인과 함께 모든 죽은 영혼들도 기리는 데 디즈니 영화 ‘코코’는 바로 이 축일을 주제로 한 영화이다.


 스페인 역시 가톨릭 국가답게 축일 맞이 행사가 성대하게 열리는 것 같다. 스페인 친구들과 함께 분장을 하고 핼러윈을 즐기자고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 오이아나(Ohiana)는 어떤 분장 옷을 살지 고민했고 나머지 친구들은 집에 매년 입던 핼러윈 복장을 입고 얼굴에 분장만 새롭게 할 거라고 했다. 핼러윈 행사가 처음인 나 역시 옷을 하나 기념으로 장만하기로 했다.


 무려 일주일 동안 아나(Ana), 오이아나(Ohiana)와 함께 알리칸테 인근의 분장 의상 집은 다 찾아간 것 같다. 처음에는 시내 근처 가게만 찾아보다 나중에는 구글맵을 보고 코스프레 의상을 파는 곳은 다 찾아 외곽 아웃렛까지 같다. 내가 머물 당시에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퀸’ 복장이 유행이었다. 옷가게 마다 할리퀸 복장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려있었다.  그 복장을 선택했다가는 길거리에서 같은 차림의 사람들을 1분 거리로 계속 만날 것 같았다. 한국에 비해 변장 도구나 의상이 조밀하지 못해 마음에 드는 의상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나와 오이아나는 결국 작년에 입은 의상을 입기로 하고 나는 가장 저렴하고 무난한 빨간 망토 의상을 구입했다.



카나발(Canaval, 카니발의 스페인 식 표현)에서 무슨 이벤트가 있는지 친구들에게 물어도 별다른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 어떤 분위기로 행사를 즐기는지 알 수 없었다. 핼러윈 당일 센트럴 메르카도(중앙시장) 앞에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분장을 하고 있어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찰리 채플린, 미키 마우스처럼 온전히 변장을 하고 온 친구들도 있었고 얼굴에 화장만으로 유령, 마녀 분장을 하고 오기도 하고 머리에 미키마우스 띠만 하고 온 친구도 있었다. 다 같이 모여 람블라(Rambla)거리에 가니 이미 변장을 한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이다.


 메리 포핀스를 분장한 아주머니, 팀 버튼 감독의 이상한 나라 앨리스 영화 등장인물들로 변신한 가족, 우주인, 마블 히어로들 온갖 영화 주인공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미국 영향을 많이 받아 핼러윈에 이태원에 분장을 한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스페인에서도 미국식 핼러윈 영향을 많이 받은 듯했다. 일본 친구들은 단체로 미니언즈에 나오는 캐릭터로 변장하고 무리로 몰려다녀 귀여웠다.


나는 변장한 빨간 망토 차차보다는 관광객이 되어 변장을 한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관광객 복장으로 변장을 할걸 그랬나 싶다.

주위를 둘러보니 변장을 하고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변장을 선보이고 길거리에 모여 함께 떠드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사진을 부탁할 때마다 모두가 내가 자신의 분장을 간택이라도 해준 것 마냥 자랑스러워하며 나와 함께 사진을 찍고 캐릭터에 맞는 포즈도 취해주었다.


메리 포핀스로 변신한 아주머니는 사진을 요청하자 우산을 펴 들고 포즈를 취해주었고 우주복을 입은 커플은 같이 사진 찍자는 나에게 우주복 모자를 씌워주었다. 오늘 아침까지도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이 어느새 이렇게 완벽하게 변신을 하고 와 그 캐릭터에 심취해 있는지 신기했다.

카나발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싱거웠다. 그저 거리에서 변장을 한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다였다. 가끔 시청에서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주기도 하고 근처 클럽에 가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지만 유명 그룹의 공연이나 디제잉은 없었다. 기대가 컸던 터라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곧 적응해 주위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모르는 행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길거리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이태원 핼러윈 파티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 파티 못지않게 즐거웠다. 가족끼리 캐릭터로 분장하고 이웃과 안부를 나누는 건전하고 즐거운 스페인식 카나발이 마음에 들었다.


 핼러윈 행사 다음날 일본인 친구 Kana와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대성당 근처 파에야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해산물들을 진열대에 올려놓고 먹고 싶은 해산물들을 고르면 파에야나 스파게티 등을 만들어주는 곳이다. 파에야를 주문하고 보니 10시가 넘었다. 스페인 저녁시간에 저녁을 먹다니 우리도 드디어 스페인 사람이 된 것 같다며 카나와 웃어댔다.


스페인 사람답게 caña 카냐(스페인 생맥주) 한잔 씩을 주문해 저녁을 먹고는 산타 바르바라 인근에 산책을 가기로 했다. 평소에는 조용했던 거리가 소란스럽다. 행사가 있는지 사람들이 모여 불꽃놀이를 보고 있다. 그런데 불꽃놀이라기보다는 쥐불놀이에 가까웠다. 아무런 안전 장비도 없는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돌리고 서커스에 가까운 묘기를 부리고 있다. 무슨 연유인가 갸우뚱해서 가만히 지켜보는데 불놀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어 걸어간다. 횃불을 돌리던 사람들은 마치 피리 부는 소년처럼 사람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물론 걸어가면서도 불놀이는 계속되었다. 사람들을 따라가 보았다.



 산타 바르바라에서 주택가로 내려오는 골목 광장에 어제 보지 못했던 DJ들이 공연을 하고 있고 주위에는 사람들이 술잔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춤을 추고 있다. 그 옆에는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폭죽을 터트리기도 하고 횃불을 돌리며 묘기를 부리고 있다. 소화기도 없고 안전장비도 없이 바로 눈앞에서 폭죽을 터트리고 불덩이가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게 무섭다. 불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조금 있으려니 머리에 커다란 뿔을 달고 악마 분장을 한 사람들이 나타나 불을 돌리며 사람들에게 겁을 준다. 작은 악마 한 사람이 얼어붙어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우리를 불 앞으로 이끈다. 악마들은 서커스처럼 불로 여러 가지 묘기를 부리더니 마지막을 인간 탑을 쌓았다. 탑 위로 올라간 악마들은 오랫동안 해온 전문가들인지 탑을 쌓는데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마치 젠가를 쌓는 것처럼 몸을 척척 쌓아 올린다. 탑이 완성되고 횃불을 든 여자가 탑 꼭대기로 올라가더니 폭죽을 터트렸다. 폭죽의 불꽃이 탑 아랫사람들에게 튀고 바로 앞에 몰려든 군중에게도 떨어지는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환호성을 지른다.


 조명하나 없는 어두운 산기슭에서 술을 마시고 불을 휘두르며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니 마치 악마들의 밤의 파티에 몰래 들어온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된 것 같다. 어둠의 파티에 온 증거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아서 가장 큰 염소 뿔을 단 악마에게 가서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악마의 왕은 흔쾌히 다정하게 우리 어깨에 손을 올리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초대받지 못한 파티에 머물다가 사건에 휘말리는 것이 떠올라 다른 악마들이 우리들이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임을 깨닫기 전에 돌아가기로 했다.


두 블록쯤 걸어 나오니 어제 카나발이 열리던 람블라 거리다. 이미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라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하다. 집에 돌아와 밝은 형광등 아래 있으니 긴장이 풀린다.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휴대폰 사진첩을 보니 악마 왕과 찍은 사진이 그대로 남아있다. 어두운 곳에서 찍어서인지 나와 카나의 눈이 빨갛게 나왔다. 그런데 악마 아저씨의 눈만은 적목 현상 없이 선명하게 나왔다.


 돌아와 인터넷을 찾아보니 코레포크(Correfoc)라는 행사였다. 카탈루냐어로 '불꽃'을 의미하는 코레포크(correfoc)는 스페인 카탈루냐의 지역 축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행사로 1978 년 바르셀로나 La Mercè 축제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악마 옷을 입은 무리가 불꽃놀이 발사기를 가지고 관중을 겁을 주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면 관중은 그들을 피하면서 즐기는 축제라고 한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전통문화로 바르셀로나에서 유래한 행사가 지금은 스페인 전역에서 전통이 되었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핼러윈과 스페인 전통 행사가 공존하는 것이 재밌다. 두 가지 모두 나에게는 낯선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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