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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Dec 30. 2021

스페인에서는 새해에 포도를  먹는다.

바르셀로나에서 맞이하는 새해


드디어 크리스마스 여행의 종착지인 바르셀로나에 왔다.

바르셀로나는 2011년 여행 이후 두 번째 방문이었다. 5년 만에 온 바르셀로나는 그때와 변한 것이 없는 듯하면서도 많은 곳이 달라져 있었다. 관광객이 가득한 람블라스 거리와 구엘공원은 그때의 그 분위기 그대로였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못 본 사이 공사가 많이 진행되어 성당 뒤편 입구의 조각들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내가 성숙한 만큼 성당도 같이 성장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5년 전 해변에서 같이 사진을 찍었던 동상이 반가워 같은 포즈로 사진을 다시 찍어 보았다. 5년 전에는 내가 이 나라에서 살게 될 줄 몰랐는데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실감 난다.




새해맞이 불꽃놀이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스페인 광장에서 알리칸테 어학원 한국인 동생들을 만나기로 했다. 두 친구 역시 크리스마스 여행을 프랑스로 떠났다가 새해맞이를 위해 바르셀로나에서 머물고 있었다.

 불꽃놀이 명당을 선점하기 위해 9시쯤 만나 먼저 화려한 몬주익 분수쇼를 구경하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서 아이들을 만나니 알리칸테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리 새롭다. 여행지에서 만났기 때문인지, 새해를 함께 맞는다는 사실 때문인지 우리 모두가 조금은 들뜬 모습이다.


새해맞이 포도알 12개


 바르셀로나 거리 전역에는 포도알 12개를 담은 컵을 파는 상인들로 가득하다. 스페인에서는 새해 아침 정각에 12 울리종소리를 들으며 포도알 12개를 먹는 풍습이 있다. 12번의 종소리는 새해 1월부터 12월을 나타내는데 12개의 포도알 하나씩 차례로  달의 소원을 비는 것이다.



 나 역시 소원을 빌기 위해 플라스틱 컵에 예쁘게 포장된 12알의 우바(Uvas, 포도) 샀다. 새해맞이 행사를 위해 과일가게에서도 길가의 노점 여기저기에서 포장된 포도를   있었다. 제법 고급스럽게 포장된 우바를 1유로에 구매하고 광장으로 향했다. 포도를 샀다는 사실 만으로 벌써부터 새해 소망이 다 이루어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분수쇼도 시작하기 전인데도 광장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이었지만 화려한 레이저 불빛에 상기된 사람들의 얼굴이 환히 보였다. 행사를 위해 준비된 거대한 스피커에서 댄스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왔고 친구들과 흥의 민족답게 광장 한가운데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방송에 중계되어 나를 알아볼 사람이 없었고 스페인에서  해의 마지막을 보낼 기회가 얼마나 있으랴 싶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런 우리를 재미있게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도 결국에는 우리와 함께 했고 나중에는 스페인 광장 전체가 클럽이  듯했다. 광장에서 춤을 추며 보내는 새해의 마지막 날은 적당히 흥겨웠고 떠들썩했으며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다.



 자정이 가까워 오자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은 중단되고 곧이어 화려한 분수쇼가 시작되었다. 몬주익 성을 배경으로 화려한 레이저와 음악이 함께하는 분수쇼를 보고 있으니 디즈니랜드의 동화나라에  기분이 든다. 화려한 조명과 거기에 맞는 음악 그리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물줄기가  마법사가 마법을 부려 분수를 조정하는  같았다. 그리고 내가 꼭 그 만화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해를 이곳에서 보낼 수 있다니 로맨틱하다.


 . 이윽고 분수쇼 보다 더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분수도 아름다웠지만 불꽃쇼는 정말 넋을 잃고 바라볼 만큼 장관이었다. 스페인의 불꽃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몬주익 성을 배경으로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은 지금도 새해가 되면 한 번씩 떠오를 만큼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쇼가 절정에 이르고 터질  있는 화약은  터졌구나 싶을 무렵 새해맞이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잽싸게 구매했던 포도를 꺼내 들고 종이 울릴 때마다 하나씩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숙련된 경험이 필요했다.   치는 속도가 너무 빨라 포도를 먹으며 한 달 한 달의 소원을 빌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5월까지는 무리가 없었는데 6월이 넘어가면서부터 그 달의 소원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결국 종이  울리고도 3개나 남은 포도 알을 입에 한꺼번에 털어 넣으며 다가  새해의 건강과 돌아가서 한국의 삶이 무사하기를 빌었다.


 그날은 인생에 손꼽힐 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새해맞이 행사였지만  다가오는 새해가  반갑지만은 않았다. 새해가 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스페인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소원을 들어줄 포도가 필요했다. 한국에서의 일상을 지켜줄 포도 알의 힘을 믿으며 다시 기운을  새해를 맞이하기로 했다.


 지금 보고 있는 불꽃과 포도 알의 기억으로 나는   해를 버틸  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감격에 겨운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입맞춤을 나누고 있었다. 한국에서 새해를 맞이했을 가족과 친구들이 떠올랐다. 스페인에서 홀로 색다른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즐겁지만 한국에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맞이하는 새해가 그리워졌다. 한국에 다시 돌아가는 것이 무섭지 않아 졌다. 친구들에게 새해 인사를 건네고 주위에 있던 스페인 사람들에게도 새해 인사를 건넸다.


“¡Feliz año nue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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