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는 오랫동안 한국인을 표현하는 키워드 아닐까. 반대로 스페인과 남미를 생각하면 느껴지는 이미지는 ‘느림, 여유로움, 게으름’이라고 할 수 있다. ‘빨리빨리’가 기본인 나라에서 ‘느릿느릿 천천히’가 익숙한 나라를 처음 접했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이란.
스페인 사람들을 만나보면 말도 빠르고 굉장히 급한 성격인데 답답할 만큼 사회는 엄청 느리게 돌아간다. 실제로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면 스페인의 답답함에 대해 끊임없이 토로하게 되었다. 매표소 창구에 긴 줄이 서있어도 직원은 본인 휴대폰 통화가 끝날 때까지 접수를 받지 않고 어학원 사무실에 문의사항이 있어서 가면 옆자리 직원과 이야기를 끝내야 겨우 내 얼굴을 들여다봐준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업무도 아니고 개인적인 사담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도 휴대폰이 울리면 사람을 앞에 세워두고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알리칸테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외국인 거주증을 받으러 시청(ayundamiento)에 갔을 때도 한여름이라 운영시간이 길지 않아 9시 정각에 맞춰 갔음에도 대기표 번호가 110번이었다. 여름철에는 시청이 9시부터 11시까지만 운영을 했기 때문에 잘못하면 당일에 거주증 신청을 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내 뒤로도 신청자는 계속 몰렸고 많은 신청자와는 대비되게 창구직원은 5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정신없이 호출 벨을 눌러 숫자를 줄여야 할 상황에 직원들은 철저하게 휴식시간을 지키고 중간중간 커피를 타 오느라 자리를 한참 비우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11시 직전에 직원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지만 내게 온 대답은 서류가 부족하니 다음날 다시 오라는 말이었다.
서류는 한국 유학원에서 말해준 그대로 다 가져갔었는데 집 계약서를 추가로 가지고 오란다. 나중에 알리칸테에서 만났던 한국인들에게 물으니 계약서는 대부분 다 받지 않았다고 했다. 집주인에게 계약서를 급하게 받고 일주일 후 다시 가서 또 90여 명의 순서를 기다린 후에 나는 다시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직원은 계약서는 보여 달란 말도 없다. 처음 가져간 그 서류만 보고는 바로 처리를 해주었다. 한국에서였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에 차서 ‘망할 스페인’을 외치며 집으로 돌아왔다. 창구 운영시간에 맞추려면 수업을 빠지고 와야 했던 나로서는 수업을 한번 놓치면 다음 수업 이해가 어려워 수업을 못 듣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한국이었으면 민원을 몇 번이고 넣었을 상황이었다.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좋아해 어렵게 이곳에 온 내가 수업을 빠지고 힘들게 등록을 하러 갔는데 외국인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고….”라고 시작하는 구구절절한 민원을 국민신문고에 올리고 남을 만한 일이었다. 애초에 대기가 그렇게 많으면 원래 한국에서는 그 업무를 하지 않던 직원들까지 튀어나와 창구에서 민원을 응대했을 것이다. 티타임은커녕 앞에 줄 선 사람들 때문에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어떻게든 빨리 일을 처리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나는 실제로 밀려드는 민원인에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9시부터 1시까지 일분도 쉬지 못하고 일한 적이 있다. 개관 당시에 서울시청사를 활용한 도서관이 궁금했던 사람들이 정말 물밀듯 밀려왔고 하루에 수천 명씩 회원증을 발급했다. 당시 너무 화장실이 급해서 다음 순서인 민원인에게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정중하게 이야기한 후 달려 나갔다. 그리고 정말 3분도 되지 않아 자리로 복귀했지만 후에 민원인은 사람을 앞에 두고 화장실에 갔었다며 민원을 넣었었다.
그중에서 제일 적응이 되지 않았던 건 슈퍼마켓 계산대에서의 기다림이었다. 사람들이 뒤에 길게 기다리든 말든 계산원은 계산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난 듯한 손님과 수다를 떨었다. 돈 계산에도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점원이 계산 금액을 말해준 후에도 한참 동안 수다를 떨고 이야기가 끝나면 그제야 돈을 꺼냈다. 계산 차례를 기다리며 지폐도 꺼내고 잔돈까지 맞춰서 세어 놓는 나에게는 뒷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엔 내가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건가 싶어서 화난 티도 내보고 헛기침도 해보고 했지만 그 둘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요즘 물가라든가 뉴스거리를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아들이 요새 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신세한 탄까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혼자 속앓이를 하다 결국엔 포기하고 ‘그래, 스페인어 리스닝한다고 생각하자’란 맘으로 대화를 들으며 기다렸다. 결국 앞 손님은 인사를 하고 떠났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 딱 맞춘 돈을 내밀었다. 점원이 고맙다며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네 덕분에 계산하기 편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더니 나에게도 이곳에 사는 거냐며 다정스레 말을 건넸고 내 서툴고 느린 대답도 차분히 기다려줬다. 뒷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대화시간을 천천히 지켜봐 주었다. 그리고 나는 웃으며 슈퍼마켓을 떠났다. 짧은 그 사이에 무슨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 시간을 못 견뎌 초조해했을까. 이 나라의 시간은 ‘빨리빨리’가 아닌데 답답해하기보다 나도 이 시간에 맞춰 새롭게 적응해야 했다.
그 후로는 나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기다림이라는 것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았다. 자연스레 이제 나도 계산원에게 안부 인사를 건넬 여유가 생겼고 세일 품목을 추천해 주기도 하고 조리법도 알려주며 가끔 짧게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계산대에서 유로화 동전이 헷갈려서 당황하며 헤매던 나를 뒷사람들은 전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줬었다. 괜찮다고 천천히 하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지갑이 어디 갔나 찾느라 한참 가방을 뒤질 때도, 물건을 다시 장바구니에 담을 때도 차근차근하는 나에게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사람이 없었다. 스페인에서는 빨리하지 않아도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신호가 바뀐 지 오래인 횡단보도에서 차들은 천천히 걸어가는 할머니를 기다려줬고 클랙슨도 한번 울리지 않았다. 내 시간을, 나만의 속도를 모두가 인정해 주고 기다려줬다. 사람마다 필요한 시간은 다르다. 각자 처한 상황도 다르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 직장에 빨리 가야 하는 자동차 주인보다 그 길을 건너야 하는 할머니에게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일했다면 나도 그때 화장실을 참지 않아도 되었을까. 천천히라는 게 정말 나쁘기만 한 걸까. 그때 나에게 민원을 넣었던 사람도 스페인에서였더라면 나를 기다려줬었을까.
몇 달을 그렇게 보내니 이제 그 느린 시스템도 적응이 되었다. 물론 생활에 불편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실수를 하거나 빨리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기다려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나를 기다려준 만큼, 나도 다른 사람을 기다려줄 의무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자연히 행동에 여유가 생겼다. 빨리 가려고 깜빡거리는 횡단보도 파란 불에 뛰지 않아도 되었고 식당에 가서 메뉴를 천천히 느긋하게 한참을 생각하며 고르고 주문한 메뉴가 나올 때까지 친구들과 마음껏 수다도 떨 여유도 생겼다. 이제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던 느릿느릿 이 조금은 좋아지기까지 했다. 다만, 절대 고쳐지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가 다 나오기 전에 손을 넣는 것과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고 견디는 것. 그 두 개는 나도 어쩔 수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