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리칸테로 오기로 결심했던 것은 딱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물론 유학원에서 추천을 하기도 했었지만 1. 학비가 저렴하다는 것, 2. 수업이 한 달 단위로 등록이 가능해 언제든 등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알리칸테라는 도시가 발렌시아 근처라는 것과 코스타리카 해안의 휴양지로 유명하다는 것은 어학원을 등록하고 나서야 알았다. 일 년 남짓 살아야 할 도시를 고른 이유 치고는 정말 단순한 이유였다. 한 번도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말라가에서 지내지 않기로 한 데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다. 학원 선생님들 중에서는 솔직하게 어학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마드리드나 말라가로 가는 것이 좋다고 말한 분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적당히 있을 것 다 있고 치안도 훌륭하고 물가도 저렴하며 누구보다 친절한 선생님들이 있는 알리칸테에 온 것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바다를 걸어서 갈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알리칸테에서 보는 바다는 한국 음식을 구하기 어렵고 어학원에 다양한 액티비티가 없다는 단점은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장점이었다.
‘스페인 중부 지중해 연안 도시로 7,000년 전 사람이 살았던 유적이 남아 있는, 긴 역사가 있는 지역이다. 블랑카 해변을 따라 발달해 있다. 발렌시아 지방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스페인에서 여덟 번째로 발달한 메트로폴리탄 지역이다.’
지식백과에 나오는 알리칸테에 대한 설명이다. 스페인에서 여덟 번째로 발달한 메트로폴리탄이라는데 서울에서 살다 간 나에게는 그냥 작은 지방 중소도시 같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바다로 유명한 속초 같은 느낌의 도시였다. 알리칸테 중심지 루세로스(Luceros) 광장 밑에는 트램역이 있고 루세로스에서 왼쪽으로 직진하면 기차역이 나온다. 그 기차역에서 한참 내려가면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어 스페인 전역으로 갈 수 있다. 루세로스 광장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알리칸테 유명 관광지인 산타 바르바라성이 나온다. 베나칼틴산 위에 지어진 산타 바르바라성은 9세기에 처음 지어졌다는데 18세기에는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성곽 위에서 지중해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성에 올라가던 도중 산기슭 레스토랑에서 결혼식이 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며 위에는 성곽이 보이는 곳에서 결혼하는 신부가 행복해 보였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정원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춤을 추고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 꼭 로맨스 영화에서 보는 결혼식 같았다.
성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미술관이 위치하고 있고 그 일대로 재즈 바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모여 있었다. 미술관 앞마당에서는 가끔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파는 플리마켓이 열리기도 했다. 그곳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알리칸테 유명 관광지가 모여 있다. 알리칸테 관광 사진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에스 플라나다 데 에스파냐 거리는 대리석 타일로 파도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타일로 장식된 거리와 야자수가 함께 기념품 가게와 어우러져 특색 있는 경관을 이룬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포스티게 해변(Playa del Postiguet)이 있다. 하얀 모래 해수욕장에 여름이면 비치파라솔과 비치 의자가 깔리고 관광객들은 강렬한 태양 아래 일광욕을 즐기며 바다 근처의 우뚝 솟아오른 산타 바르바라 성을 볼 수 있다. 해변의 오른쪽에는 요트 선착장과 함께 카지노와 레스토랑이 몰려있어 여행을 즐기러 온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산타 바르바라성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면 산타 크루스 지역이다. 작고 오래된 집들이 산기슭까지 이어지는 데 집집마다 작은 화분이나 벽화로 꾸며놓아 산까지 올라가는데 재미를 준다. 구도심의 끝에는 알리칸테 대성당이 있고 대성당 주위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레스토랑이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레스토랑을 피해 숨은 맛집을 찾는 것도 현지에서 사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단골들만 알고 오는 듯한 오래된 술집에서 모히또를 마시기도 하고 미술관 근처 재즈 바에서 재즈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대성당을 지나 루세로스 쪽으로 나오면 람블라(Rambla) 거리였다.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와 이름이 같은 이 거리 역시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과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그 거리 오른쪽에는 알리칸테 유일의 백화점 코르테 잉글레스(el corte ingles)와 쇼핑몰들이 있어서 필요한 물건들을 살 수 있었다. 람블라 거리 시작점에는 근사한 중앙시장(central commercial)이 있고 그 근처에서 24번 버스를 타면 알리칸테 대학교가 나왔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는 투우 경기장도 있었다. 모든 곳이 다 도보로 이동이 가능했다. 지금도 알리칸테 거리 곳곳이 눈에 선하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여유로운 도시의 분위기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유롭고 평화롭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가끔씩 트램을 타고 외곽의 영화관에 가서 스페인 어린이 영화를 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케이크를 파는 카페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집 앞에는 맛 좋은 일식 레스토랑이 있었고 귀여운 빵을 만들어 파는 빵집도 있었다. 없는 것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있을 것이 다 있는 알리칸테를 나는 사랑했다. 다소 단순한 이유로 이곳에 오기로 결정했지만 최고로 잘한 결정이었다고 지금도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