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정도 지나니 스페인에 사는 것에 익숙해졌고 한국에서처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가장 중요했던 ‘회사’가 내 생활에서 빠졌다는 것만 빼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회사가 빠지니 낮잠을 잘 시간이 생겼고 바리바리 싸갔던 약들이 무색해 질만큼 건강이 좋아졌으며(한국에서 달고 살던 감기를 그곳에선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다.) 저녁 산책마다 바뀌는 계절감을 관찰할 수 있었다. 상사의 잔소리나 눈치도 없었으며 친구들과 감정 상할 일도 없었다. 한참 어린아이들과 일상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니 갈등이란 것이 생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평일의 보통 내 일상은 단순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2시쯤 돌아와 점심을 준비해 늦은 점심을 먹고 밀린 집안일과 숙제를 하고 낮잠을 잔다. 일어나서는 7시쯤 슈퍼마켓에 들러 장을 보고 저녁을 먹은 후 산책을 갔다. 같은 집에서 살았던 한국인 동생은 이벤트 없는 일상에 괴로워하며 스페인까지 와서 집에 있는 것은 우울한 일이라고 매일 약속을 만들었지만 나는 아무 일이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 일상이 무척 소중했다. 오늘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 없이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매일을 오늘 예정된 일거리에 대한 걱정 혹은 나도 모르게 벌어질 일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깨어났다. 가끔은 친구를 만나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곤함이 밀려올 때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졌다. 비단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의 직장인들 대부분은 하루에 대한 기대보다 걱정으로 시작하는 날이 더 많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반복되는 일상에 특별히 벌어질 일은 없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사는 이곳에서 내 생활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었다. 생활과 인간관계 모두가 심플해졌다. 그 심플함이 좋고 소중했다. 일상이 지루해지면 내가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면 되었다.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기 억울한 날에는 멀리까지 산책을 가기도 하고 혼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 가서 수영을 하기도 했다. 그 시간들이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쉬워 최대한 스페인에 대한 기억으로 채우려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그러다가도 가끔 외로움이 밀려오면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영상통화를 하며 마음을 달랬다. 통화를 끝내면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깊게 묻어두었던 외로움이 비집고 나와 우울해졌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집 10분 거리의 바닷가 포스티게(postigue)에 가서 바다를 바라봤다. 알리칸테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산타 바르바라(Santa Barbara) 산이 한눈에 보이는 포스티게 해변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면 그 외로움들이 다시 마음속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한국이 그리워지면 집에서 노트북으로 한국 예능을 봤다. 가끔 인종차별을 받거나 외국인이어서 겪게 되는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그리고 한국이 그리워질 때면 방에 누워 ‘무한도전’을 봤다. 무한도전을 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었다. 한국 내 방 침대에서 ‘엄마’라고 부르면 엄마가 꼭 대답을 할 것 같은 익숙한 안정감이 들었다. 하지만 익숙한 안정감이 필요한 것은 아주 이따금 잠시였다.
다른 나라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단조로운 일상 속에 가끔 양념처럼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삶이기도 했다. 매일 가는 슈퍼마켓에서 새롭고 신기한 물건을 발견하면 오랫동안 서서 그것을 관찰하기도 하고 맛도 모르고 무작정 사 왔다가 도저히 못 먹겠어서 버리기도 했다.
학교 가는 길 버스에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엔리케 이글레시아’(Enrique Miguel Iglesias)의 ‘바일란도(Bailando)’를 들으며 ‘이 나라는 노래 취향이 이상하다’고 혼자 생각하기도 하고 버스 아줌마들이 수다 떠는 내용에 귀 기울이다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결혼한 사람들은 똑같구나’ 느끼기도 하며 매일 소소한 즐거움을 찾느라 잠깐 밀려오는 외로움 따윈 견딜 수 있었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와 필리핀계 스페인인 이사벨 프레이슬레르 사이에서 태어난 스페인의 팝 음악 싱어송라이터로 Bailando, Duele la corazon 등을 부른 가수이다. 그는 적어도 내가 알리칸테에 있는 동안에는 스페인 국민가수였다. 스페인에서 사는 내내 길거리나 버스에서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노래를 하루도 안 들은 날이 없을 정도로 인기였다. 흥겨운 라틴음악 리듬에 쉬운 가사로 중독성이 강해 미국에서도 인기가 높아 스페인 사람들의 가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았다. 그의 아버지 역시 오래전 스페인에서 유명한 가수였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 든 세대에게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아들이란 점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젊은 세대에게는 흥겨운 리듬과 중독성 있는 노래로 인기가 많았다. 우리나라는 노래의 히트 기간이 짧은 편인데 이 나라는 한 번 유행하면 끝장을 보는지 일 년 내내 주야장천 찾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라틴리듬이 거슬리고 지겹다고 느껴졌지만 자꾸 듣다 보니 쉽고 반복되는 가사가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입에 붙어 나중에는 하루 종일 흥얼거리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씩 스페인이 그리울 때면 유튜브에서 이 노래를 찾아 듣는다. 그러면 그 음악과 함께 그곳에서 있던 기억과 일상이 다시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주말엔 주로 여행을 갔다. 수업 시간에 추천받았던 근교 도시를 버스를 타고 혼자 갔다. 스페인은 버스와 기차가 모두 굉장히 잘 되어 있어 못 가는 곳이 없었고 예약도 편리했다. 스페인 고속도로 휴게소는 진짜 화장실만 가고 기름만 넣는 곳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가이드북도, 제대로 된 정보도 없으니 그렇게 도착하면 관광 안내소에 가서 유명한 관광지를 물어보고 알려주는 곳에 방문했다. 목적지 없이 터덜터덜 걷다 맛있어 보이는 레스토랑(주로 혼자 가서 먹어도 될 것 같은 분위기의 식당)에 들어가 오늘의 메뉴를 주문하고 창밖을 보며 스페인 사람처럼 2시간 넘게 식사를 즐기기도 했다.
가끔 반 친구들이 파티나 여행에 초대하기도 했다. 초대를 받으면 최대한 많은 친구를 만나려고 노력했다. 처음엔 노력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먼저 말도 붙이고 농담도 하며 정말 즐기고 있는 순간들이 왔다. 일 때문에 만난 사회 친구가 아닌 정말 오랜만에 학창 시절 친구들이 생긴 기분도 들었다.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어보는 것도 처음 하는 경험이었고 매일 모든 것이 새로웠다.
물론 한국에서 보내던 일상과 비교해 상상했던 만큼 외국생활에서 오는 큰 색다름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스페인에서의 일상은 한국에선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들로 그렇게 채워져 갔다. 잘 못 산 물건이 한국에선 스트레스였겠지만 여기에서는 즐거운 추억거리가 되었고 한국이었으면 짜증이었을 법한 아주머니들의 버스 안 수다도 외국어 듣기 교재가 되었다. 반복된 일상에 첨가된 작은 새로움들이 스페인에서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내가 스페인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바로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