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a! 알리칸테

by 이수현



여행을 좋아해 자주 해외여행을 하긴 했지만 한 도시에서 일주일 이상 머무른 적은 없었다. 가끔 여행한 도시가 마음에 들어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게 진짜가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이름도 생소한 도시에서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공무원 시험을 합격하고 떠난 한 달간의 유럽여행에서 계획에 없던 바르셀로나에 오게 되었을 때도 가우디의 작품에 감탄하고 버스 안에서 만난 소매치기에게 겁을 집어먹기만 하였지 이곳에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마드리드에서 나는 아직 여행자였다. 다른 여행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민 가방을 들고 호스텔에 투숙했다는 점이고 왜 스페인에 여행 왔냐는 질문에 어학연수하러 왔다고 대답을 하며 뿌듯함을 지닌 미소를 지었다는 점만 달랐다. 마드리드에서 여행을 마치고 스페인 기차인 렌페(Renfe)를 타고 알리칸테 역에 내렸다. 한국에서 지도로만 보던 거리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곳이 이제 내가 8개월 동안 살게 될 도시다. 사람이든 도시이든 첫인상이 중요한 법인데 조용하고 깔끔한 것이 마음에 든다. 왜인지 이곳에서 살게 되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객이 아니라 이제 나는 알리칸테에 사는 거주민이 되었다는 사실이 자못 감격스러웠다.




처음 짐을 가득 안고 집주인 아저씨를 만나던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내가 태어나 처음 자취하는 집의 집주인이었고 알리칸테에서 처음 만나는 스페인 현지인이었다. 당시 알리칸테 대학 부설 어학원(Central Superial de Idiomas)은 부동산 담당 부서를 운영하며 어학원에 등록한 학생들을 위해 렌트할 집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집을 따로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작용해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도 있었다. 집을 가지고 있는 주인들이 어학원에 집을 등록하면 학원에서 신규 학생을 배정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배정해준 그 집에서 무조건 3개월은 살아야 하는 것이 계약 조건이다.

한국에서 유학원을 통해 알리칸테 어학원에 등록하면서 집을 배정받고 미리 집주인의 이메일 주소와 핸드폰 주소를 받았다. 당시는 현지에서 쓰는 휴대폰이 없어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에 이메일로 한국에서 미리 2시에 집 앞에서 보자고 약속을 잡은 상태였다. 집주인 이름이 후안(Juan)이란 사실만 듣고 어떻게 생겼는지 나이는 얼마나 먹었는지도 모른 채 기다리다 혹시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했다. 집주인이 일찍 도착해서 기다릴까 약속시간 30분 전부터 무거운 이민가방을 든 채 문 앞에 서있었다.



건물 규모에 맞지 않게 작은 대문이 음식점과 옷 가게 사이에 숨어 있었다. 대로 근처의 피소(Piso)들은 보통 1층엔 음식점이나 상점을 운영하고 2층부터 사람들이 거주한다. 우리 집이 될 건물 1층에 들어선 멕시칸 음식점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으려니 시원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셔츠를 차려입은 할아버지가 아는 체를 한다. 집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당황하는 낭패는 보지 않고 사기도 당하지 않았다며 안도하고 자신 있게 인사를 건넸다. “Hola!” 하지만 자신감 있던 모습은 거기까지였다. 나름 몇 개월 한국에서 스페인어를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집주인 할아버지의 답인사를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겨우 인사 한마디를 건넨 나에게 처음 만나는 알리칸테 스페인 현지인이었던 할아버지는 빠르고 안 들리는 발음으로 말을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쏟아낸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더운 날씨에 무거운 짐,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다행히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끌고 왔던 이민가방과 캐리어를 싣고 9층 버튼을 눌렀다. 집주인이 올라가면서 같이 살 룸메이트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집은 나를 포함해 2명이 사는데 현재 살고 있는 한 명은 일본인이란다. 문화적 차이가 큰 나라의 사람이 룸메이트면 어떨까 걱정했는데 조금 다행스럽기도 하다. 이럴 때면 가깝게 느껴지는 게 일본이다.

문을 열고 들어간 집이 제법 깨끗해 마음을 놓았다. 거실도 있고 주방도 깔끔하고 화장실도 넓은 편이었다. 게다가 큰집에 2명만 산다니 북적거리는 것보다 훨씬 좋다. 오른쪽 방이 내 방이라며 방문을 열었는데 집주인도 당황한다. 깨끗한 거실에 비해 내가 쓸 방 상태가 말이 안 나올 정도다. 청소도 하지 않고 야반도주하듯 전 세입자가 떠난 방은 방문 앞에 스탠드 전등 유리가 깨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먼지가 뭉쳐 돌아다녔다. 침대는 커버도 없이 푹 꺼진 매트리스가 내부의 솜을 부끄럽지도 않은지 드러내고 있었다.

충격에 휩싸여 말이 나오지 않는데, 주인은 집이 아주 좋다며 나에게 자랑을 해 댄다. 빠른 속도로 스페인어를 쏟아내는 데 그 말이 당황해서 둘러대는 말이란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러고는 청소부를 불러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계약서를 쓰고 월세를 받아서 사라져 버렸다.



처음 유학원에서 안내를 받을 때에는 학교에서 소개해 준 집들의 월세가 250유로로 정해져 있다고 들었었다. 둘만 사는 집의 월세가 250 유로면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반전이 있었다. 다른 집들이 보통 월세에 가스토(gasto)라는 공과금이 포함되는 반면 이곳은 에어컨도 없는 집이 가스토를 따로 청구했다 90유로의 공과금을 추가로 지불해야 해서 총월세는 340유로였다. 한 달에 40만 원 정도 되는 방세를 내려하니 부담이었다. 뽑기가 잘못 걸린 것이었다. 같이 수업을 듣던 한국인 친구의 경우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지만 넷이서 사는 집에 230유로 정도를 지불했다고 하고 다른 친구들도 240~ 260 유로 정도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달이 10만 원 넘는 돈이 계획보다 추가로 들어간다 생각하니 당혹스럽다. 학원에서 소개해주는 집은 모두 3개월 이상은 살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보통은 이사의 불편함도 있고 대부분이 크게 나쁘지 않아서 소개받은 집에서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살았지만 나는 3개월 후 집을 알아봐서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나중에 집주인은 이후로도 나를 많이 괴롭게 했는데 거주증에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애를 먹이기도 했고 기본으로 제공해야 할 필수품들도 제공하지 않았다, 청소도 직접 해야 했고(부엌이나 욕실 같은 공용공간은 보통 청소부를 불러 청소를 해주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룸메이트가 일본으로 돌아가며 새롭게 온 덴마크 롬 페이트에게는 나와 다르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서 3개월 후 나는 새 집을 찾아 이사를 했다.





개미가 기어 다니는 방에 앉아 깨진 유리를 보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나마 깔끔한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청소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청소부는 오지 않았고 집안을 뒤져 청소도구를 찾아 직접 청소하기 시작했다. 집에 있던 청소도구도 변변치 않았다. 모가 다 빠진 빗자루와 말라비틀어진 대걸레를 찾아 바닥을 주방세제로 다 닦고 가져온 수건에 물을 묻혀 걸레질하고 유리도 치우고 나니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청소를 다 마치고 우크라이나 출신이라는 청소부가 왔다.

방을 둘러보던 그 여자는 자기가 청소할 것이 전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한참은 더 치워야 할 것 같았지만 물걸레질만이라도 한 번 더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녀는 정말 성의 없이 바닥에 물만 묻히고 그렇게 20분도 안되어 쉽게 돈을 벌고 떠났다.

가져왔던 짐을 풀고 한참을 더 정리하고 나니 집주인이 돌아왔다. 생각보다 더 깨끗하다며 나보고 청소를 직접 했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엄지를 들어 보인다. 침대 커버를 던져주는데 빨지도 않고 먼지가 잔뜩 묻은 커버를 그냥 손에 둘둘 말아서 들고 온 것이다. 이불은 주지도 않았다. 이불을 달라고 말할까 생각하다 커버가 이 상태면 차라리 새 이불을 사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 것으로 가져다 달라고 말할 기운도 없어 그대로 받아 들었다. 저것이라도 없으면 오늘 밤은 벌어진 틈으로 솜이 다 보이는 매트리스 위에서 이불도 없이 잠을 자야 한다. 첫날부터 낯선 타국에서 세입자 설움까지 당하니 오전의 기분 좋음은 사라지고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까 싶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학교에 집을 연결해줄 때 보통 계약 조건이 포함되어 있어 방과 함께 침대와 침대 커버와 이불은 집주인이 필수적으로 제공해줘야 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몰랐고 알았다 하더라도 짧은 스페인어 실력에 주눅이 들어 항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이불도 없이 빨지도 않은 매트리스 커버 위에서 알리칸테에서의 첫날밤이 저물었다. 9층 높이의 집이라 침대에서 바라본 창문으로 스페인 하늘이 보였다. 이제 여기가 내가 살 곳이다. 하늘이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날 밤하늘은 매우 맑고 바람 한 점 없는 높은 하늘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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