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사계절: 시작

서른 넘어 혼자 살아본 스페인 이야기

by 이수현



외국이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에 비해서’ 나이 한 두 살 정도는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이가 많구나.’라는 사실은 처음 스페인 땅의 도착지인 마드리드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체감할 수 있었다. 일정상 바로 어학연수를 할 곳인 알리칸테가 아니라 마드리드에서 이틀간 관광을 한 후 기차를 타고 알리칸테로 와야 했다. 내가 묵던 마드리드 호스텔은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묵는다는 그곳이었다. 바로 문 앞에 스타벅스가 있어 나를 기쁘게 하던 그곳.


혼자 관광 준비도 없이 온 마드리드였기에 도착 첫날부터 외로웠다. 20대 시절엔 혼자 왔어도 자연스레 동행을 만나 관광을 같이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날만은 한국인을 볼 수 없었다. 그러다 혼자 온듯한 한국인 여행객을 보게 되었고(호스텔에는 대학생이 대부분이었다. 6월 말이라 직장인이 여행 오긴 이른 시기이긴 했다.) 말을 걸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행선지가 같아 혹시 동행할 수 있냐고 물으니 정말 정중하게 거절을 하더라. 마드리드 궁전에서 나중에 보니 또래 동행과 함께 하고 있었다.


첫 수업에서 우리 반은 모두 5명이었다. 첫 시간 자기소개하는 데 나이를 이야기하라고 했다. 다들 18-23살이다. ‘뭐 외국은 나이 신경 안 쓰니까’라고 ‘쿨’ 해지려 노력한다. 그런데 확실히 무언가 거리감이 느껴진다. 다들 방학 때 스페인으로 어학연수를 온 상황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대화는 대학생활로 이어진다. 특히 어학 수업이다 보니 개인에 대해 이야기할 일이 많은데, 예를 들면 “너희 나라에 있었을 때 보통 하루 일과가 어땠니”라는 질문 같은 것들을 많이 했다. 다들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노는 일상의 이야기를 스페인어로 나눈다. 자연스레 대화를 통해 각 나라 대학별로 문화 차이도 나누고 또래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그러다가 내 질문 차례가 되면 “한국에서 보통 나는 이 시간에 회사에서 일을 한다.”라고 대답한다.

게다가 나는 우리 반에서 제일 말도 못 했을

뿐더러 대부분이 거의 관심 없는 동양의 조그만 나라에서 왔다는 사실에 더 자신감이 떨어진다. 물론 나이보다는 소심하고 낯가리는 성격 탓이 더 클지도 모른다.

알리칸테 대학교 어학원

실제로 같이 conversacion(회화) 수업을 듣는 David(데이비드, 스페인어로는 다비드라 부른다.)는 미국에서는 교수였지만 방학을 맞아 스페인어를 배우겠다며 이곳에 와 학생으로 수업을 들었다. 그는 제자들 나이 때인 학생들과 친구처럼 너무도 잘 지냈다. 버스에서 만난 아무에게나 말을 걸 만큼 적극적인 성격이었고 아이들은 그런 아저씨를 자연스레 받아주었지만 가끔 보면 눈에 띄게 귀찮아하기도 했다. 나는 사실 어린 친구들보다는 예순이 다된 다비드가 훨씬 더 편했다. 생각해보면 서른이라는 나이는 애매한 경계의 나이였다. 30대는 가장 경제활동이 활발한 나이였고 학교가 아닌 직장에 있는 것이 보통일 터였다. 막 사회로 나가기 위해 공부해야 할 20대와 여유가 있는 60대는 볼 수 있지만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는 보기 힘든 곳이 학교였다. 그렇게 60대인 다비드와 30대인 나 그리고 20대 초반 친구들과 10대 친구들이 어울려 수업을 받았다.

모두에게 관심이 많은 미국인 아저씨 다비드(David)는 그런 나를 많이 챙겨줬다. 학교가 도시 중심지에서 좀 떨어져 있어 학생들 대부분 트램이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는데 보통 친한 무리끼리 함께 모여 버스를 탔다. 다비드는 항상 나를 챙겨서 갔고 선생님과 반 친구들 모두와 함께 모임을 만들어 수업이 끝난 후 식사를 하고 바(Bar)에 가기도 했다..

기초반이었기에 반에서 우리끼리 대화를 할 땐 주로 영어를 사용했다. 영어 대화에 기가 죽어 “난 영어도 잘 못해”라고 말하면 다비드는 “나도 한국어 못해. 스페인어도 못하고 그런데 너는 영어 다 알아듣잖아. 내가 보기엔 아주 잘하는데? “라고 웃으며 이야기해줬다. 실제로 다비드는 미국 공대 교수라는 명성에 맞지 않게 스페인어 실력이 형편없긴 했다. 하지만 주눅 들지 않고 항상 열심히 했다. 그런 다비드는 한 달만 수업을 듣고 개강 때문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언제까지 챙겨주는 사람을 기다릴 순 없었다. 내가 변해야 했다. 이왕 큰 마음먹고 온 거 무엇을 못하랴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외국 살이를 시작했는데 이대로 벙어리로 있다 갈 수 없었다. 친구들 말대로 이건 직장인들의 로망 같은 기회이다. 나는 이곳에서 아주 잘 살아야 할 의무가 있었고 잘 버텨 내야 했다. 한국에서처럼 안 살려고 떠나왔는데 한국에서처럼 소심하게 살 수 없었다. 말 못 한다고 기죽을 거 없었다. 다비드 말처럼 그들은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내 언어가 아닌 스페인어를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자신감을 갖기로 했다. 떠나오기 전 오랫동안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하고 오신 신부님께 생활에 대한 조언을 구하니 해주신 말씀이 있었다. “사람들이 간혹 무례하게 굴거나 무시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아라. 너는 네 돈을 내고 공부하러 온 학생이다. 지불한 돈만큼 학교는 그리고 그 나라는 네가 그곳에서 생활하는데 도움을 줘야 한다. 기죽을 필요 없다.”

맞다. 나는 열심히 모은 내 월급으로 이 나라에 공부하러 온 학생이다.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있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 나는 그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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