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단 한 번의 추억 여행입니다.

여행하면서 느낀 4차원 단상

by 반은섭

2월 한 달은 호주에서 보내고 싶어서 일찌감치 항공권을 구입해 놨습니다.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출국을 고민하긴 했지만, 다녀온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작년에 여행한 서호주는 마치 끝없는 광야 같았습니다. 이번엔 호주의 동남부 지역입니다. 시드니를 중심으로 한 반대편 호주는 잠잠하게 숨 쉬고 있던 세포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여행을 통해 잠깐이나마 우리가 경험하는 차원을 보다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여행하면서 느꼈던 차원(Dimension)에 대한 단상을 옮겨봅니다.


차원(Dimension)


기하학(Geometry)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과 도형을 다루는 수학의 한 분야입니다. 중학교에서 삼각형이나 원의 성질들을 자세히 배우죠. 피타고라스라는 수학자도 나옵니다. 고등학교에선 원과 같은 도형을 나타내는 좌표와 벡터를 배웁니다. 2차원, 3차원도 나오지요. 모두가 다 기하학의 내용입니다.


길게 뻗어 있는 직선이 1차원입니다. 원점을 기준으로 위치를 정하려면 단 하나의 숫자만 있으면 됩니다. 평면은 2차원이죠. 평면에 있는 점들은 단 두 개의 숫자로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어요. 중학교 때 배운 순서쌍 (a, b)를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3차원입니다. 높이가 있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날아다니는 파리의 위치는 세 개의 숫자로 정해집니다. 2차원 평면에 바로 높이가 더해진 겁니다.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날려보는 실험은 차원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비행기를 날려본 뒤에 백지에 종이비행기의 경로를 그려본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종이비행기의 경로를 그려보다.


종이비행기의 어느 한순간의 위치를 표현하기 위해선 세 개의 숫자가 필요합니다. 바닥에서의 위치를 나타내는 숫자 두 개와 높이에 해당하는 숫자 한 개를 합쳐 (a, b, c)로 좌표를 나타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좌표들이 비행기의 경로를 만들어냅니다.


신기한 것은 그 경로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모두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천차만별의 인생입니다.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수학 선생님과 열심히 문제를 푸는 학생들 사이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만 하는 순수한 친구가 있겠지요. 누구나 수학을 잘할 순 없습니다. 비록 수학은 못하지만, 종이비행기의 경로는 누구보다 멋있게 그릴 수 있습니다.


종이비행기는 3차원 공간을 이동하지만, 우리는 2차원 백지에 그 경로를 그려야 합니다. 종이에 그려진 경로만으로는 비행기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담아낼 수가 없지요. 상상만 가능합니다.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행위와 여행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경로를 상상하는 일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행도 그렇죠. 내가 직접 떠난 뒤에 나만의 방법으로 오롯이 느껴야 합니다.




4차원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3차원에 시간이 추가됩니다. 사실, 우리는 4차원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 아주 근사한 기차역이 있습니다. 그 앞을 오래된 트램들이 지나고 있네요.



기차마다 출발 시간이 있습니다. 타이밍을 못 맞추면 다른 기차를 타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친구들과 약속을 할 때도 장소는 물론, 반드시 시간을 정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공간에 시간을 추가해 시공간 개념을 생각했습니다. 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시공간은 하나의 묶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시간은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해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지점에 그냥 존재하고 있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공간과 시간은 상호 유기적으로 작용합니다. 공간 운동을 빠르게 할 경우에 시간은 천천히 갑니다. 어린 학생들은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죠. 어릴 땐 시간이 하도 더디게 가서 빨리 어른이 되면 좋겠지요. 반면에 노인들이 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생체 시곗바늘의 속도는 빠릅니다.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오래된 성당의 앞자리에 앉아서 경건하게 기도합니다. 과거의 삶을 반성하고 또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예배당의 분위기와 특유의 냄새는 시간의 초월을 돕습니다.



많은 눈물의 기도가 있었겠지요.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역사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겁니다.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늘 일어납니다.


시대를 초월한 예술 작품들도 있습니다. 화백은 운명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미술관에 살아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해 그림을 감상합니다.



도서관엔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책들이 쌓여 있습니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리 거창하지 않습니다. 공부한다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해 자유롭고 인간다운 삶을 산다는 증거입니다.



수만 년 세월의 흔적을 더듬습니다. 칼바람과 거센 파도보다 시간의 힘이 더 셉니다. 우리에게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자연이라는 조각가보다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요?




짧은 여행이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짧은 여행이 되겠죠.


Life is a trip down memory lane
(인생은 단 한 번의 추억 여행이다.)



누구나 즐겁고 행복한 삶, 보람되고 의미 있는 삶을 꿈꿉니다. 영원이라는 시간에서 보면 그저 흘러가는 한 점일 뿐이겠지요. 싱가포르에서의 삶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아직은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도 멋진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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