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프면 부모가 아프다, 그 말을 누가 처음 했을까.
그저 흔한 말처럼 들렸던 이 문장이, 이제는 뼈저리게 느껴진다. 새해 첫날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유는 둘째 아이 때문이다. 이제 겨우 7개월을 바라보는 아이가 벌써 6일째 아프다.
첫째 아이가 아팠을 때가 떠올랐다. 2021년 초, 코로나의 공포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돌도 지나지 않았던 첫째가 고열로 밤을 새우던 어느 날, 119를 불러야만 했다. 하지만 코로나 확진 가능성이 있는 아기를 받아주는 병원은 없었다. 구급차 안에서 점점 축 늘어져 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느꼈던 무력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다행히 첫째는 지금 건강하지만, 그 기억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여러 이슈가 있었다. 그래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났고, 나는 그 아이가 유난히 더 마음이 쓰였다. 그런 아이가 지난 토요일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토요일과 월요일, 같은 병원(A 병원)을 방문했지만, "토요일에 기관지염이라 진단했고, 독감 검사와 코로나19 검사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항생제를 바꿔보자"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숨소리는 더 거칠어졌고, 몸은 축 처져 갔다.
1월 1일, 신정이라 A 병원은 문을 닫았다. 우리는 유명하다는 B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폐렴이다. 이미 진행이 좀 된 것 같다. 입원 치료가 필요한데, 안타깝지만 병실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동안 발을 동동 구르며 여러 병원에 전화를 걸었지만 휴일이라 답을 받기조차 어려웠다. 다급해진 마음에 병원 간호사님들의 도움으로 알게 된 C 병원을 찾았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C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아이의 산소 포화도 수치가 너무 낮았다. 아이는 더 축 처져 있었고, 병원 측에서는 "이 정도면 3차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 우리를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아이의 손가락에 매달린 화면을 보니 산소포화도가 68%다. 머리에 천둥번개가 치는 듯 했다. 95% 이상이어야 할 수치가 이렇게 낮다니 생명과학을 공부하며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빠르게 지나가며 심각하게 낮은 수치가 믿기지 않았다. 막막함과 무력감이 몰려왔다. 지금이라도 아이가 태어났던 세브란스 병원으로 가야 하나? 가려면 1시간도 더 걸릴 텐데 겨우 갔더니 거부당하면 어떡하지? 아내는 울먹이며 "병원들이 다 안 받아주는데, 저희 아기는 어떡하냐"라고 묻고 있었다. 하지만 간호사 분들도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우리는 정말 작고 연약한 아이처럼 느껴졌다. 어디에도 기대지 못한 채로 아이의 상태를 지켜보는 시간은 끝없는 불안이었다. C 병원의 간호사 분 중 한 명이 말했다.
“응급실에 전화하지 말고 그냥 가보세요. 전화로는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119에 신고했다. 아이의 산소포화도는 60%대로 여전히 낮았고, 폐렴 증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기에 이대로 더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신고를 접수한 소방관은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하며 절차를 진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 대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원들은 아이의 병력 정보를 사전에 파악한 후 C 병원 앞에 도착했다.
아이와 아내는 구급차에 올라탔고, 대원 분은 곧바로 영아용 산소호흡기를 사용했다. 산소포화도가 점차 안정적으로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산소포화도가 회복되었어도 원인 제거는 병원에서만 가능했다.
대원 분은 가까운 병원 이송 원칙에 따라 용인 세브란스 병원으로 연락을 시도했다. 용인 세브란스 병원 측에서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아이의 병력을 확인해 치료 가능 여부를 물어보겠다고 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은 둘째 아이가 태어났던 곳이다. 하지만 내가 걱정한 대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현재 치료가 가능한 상태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회신이 왔다.
다행히 용인 세브란스 병원에서 아이를 받아주겠다는 확답이 내려왔다. 마음 한 편의 큰 짐이 조금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구급 대원은 “병원 측에서 대기 인원이 많아 바로 입원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 너무 급하게 따라오지 말라”라고 했다.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무력하게 아이의 상태를 지켜보고만 있었을지도 모를 순간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아내는 아이를 안고 구급차에 몸을 실었고, 나는 뒤따라 차를 타고 병원을 향했다. 차를 몰며 문득 첫째 아이가 떠올랐다. 아빠 차를 타고 가며 구급차와 경찰차만 보면 그렇게 신나 하는 첫째이다. 5일째 둘째 아이 간호에 집중하느라 첫째에게 소홀해졌던 게 마음에 걸렸다. 비록 첫째 아이가 티를 내려하지는 않았지만, 어린 마음에 외로움을 느꼈다는 것을 왠지 모르게 나도 느껴졌다. 첫째라 하지만 이제 38개월 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는 잘 있을까 궁금했다.
차 안에서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첫째 아이의 상태를 물었다. 통화 중 스피커를 통해 들려온 “엄마는?”이라는 아이의 말 한마디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둘째 상태를 보면 입원이 하루 이틀로 끝날 것 같지 않은데, 첫째가 좋아하는 엄마를 보지 못해 얼마나 더 외로워하게 될지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둘째 아이의 응급실 병상이 배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병원에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아내의 연락에 안도했지만, 보호자 1인만 입장 가능한 규정 탓에 나는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카톡을 확인해 보니 학급 학생들과 졸업한 제자들에게서 온 메시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아이들의 안부 인사와 감사 메시지를 읽으며 잠시나마 마음이 따뜻해졌다. “혹시 답장이 늦었다고 실망하거나 귀찮아하진 않을까?” 걱정이 들어 얼른 답장을 하려고 하는데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에서 입원 물품을 챙겨 와 줘.” 그 말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며, 올 한 해는 나와 우리 가족의 건강과 첫째의 마음을 더 잘 돌보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