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는 아이를 바라보면 하루하루가 놀랍다. 그 변화의 순간들은 마치 물결처럼 흐르고, 나는 그 순간들을 손으로 움켜쥘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낀다.
첫째 아이가 태어났던 그날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아이는 어둠 속 어미의 양수에서 포근하게 살아오다가, 대비할 겨를도 없이 빛과 공기의 세계로 던져졌다. 피부 위로 빛이 스며들고 서늘한 공기가 몸을 감쌌을 때, 그것은 아이에게 천재지변 같은 사건이었을 것이다.
태어난 아이가 처음 내 품에 안긴 그 순간을 기억한다. 하지만 정작 그 순간은 문학 작품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충만한 감동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내 품에 처음 안긴 그 아이는, 불그스레하고 허연 피부에 비현실적인 머리와 몸통 비율을 지닌, 마치 보건의료용 실리콘 인형처럼 느껴졌다. 적절한 비유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만큼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고 낯선 순간이었다. 그저 이게 내 아이구나, 내가 부모가 되었구나, 그리고 부모님은 어땠을까 등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아이가 처음 우리 집에 온 날을 기억한다. 천에 감싸여 완연한 아기가 되어 집으로 들어선 그 순간, 우리 집은 새로운 존재로 채워졌다. 부부만 지내던 집 안은 가끔씩 찾아온 정적 속에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작은 손짓과 발짓이 집안의 중심이 되었다. 그전까지는 그저 아늑했던 공간이, 이제는 아이의 미소와 울음으로 가득 차 활기가 넘쳤다. 침대에 매달린 모빌, 아기용품들을 담아두는 서랍장, 그리고 손바닥만 한 빨래들을 조심스럽게 널던 그 순간들이 집안 곳곳에 묻어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처음 기던 날도 떠오른다. 마치 귀여움으로 무장한 애완동물 같았다. 온 집안을 탐험하던 아이는, 손에 닿는 물건마다 입으로 가져가며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먹이고, 놀아주고, 똥오줌을 치우고, 재우는 일이 반복되며 혼자 두기 어려웠던 그 귀여운 생명체는 우리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와중에도 눈을 맞추면 환하게 웃어주는 아이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저 작은 존재가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라는 감정은 내가 부모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내 자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이가 처음으로 "아빠"라고 부른 날을 잊을 수 없다. 돌봄의 대부분을 맡았던 아내가 아닌, 상대적으로 육아 시간은 적었던 내가 아이의 첫 말이라는 사실이 의아하면서도 벅찬 기쁨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내의 눈치를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했다. 그 순간 아내는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내가 이겼다.
아이가 처음 걸었던 날 생생하다. 좁고 많은 물건으로 가득 찬 신혼집에서, 뒤뚱뒤뚱 불안한 발걸음으로 걷는 아이를 보며 언제 어디서 넘어질지 모를 불안감으로 가득 찼다. 언제 어디서 넘어지거나 다칠지 몰라 아이를 따라다니며 손을 뻗고 있었다. 그런 걱정 속에서도, 처음 혼자 두 발로 서서 앞으로 나아간 아이는 부모로서 나에게 커다란 자랑이자 경이로움을 안겨주었다.
열에 들떠 잠든 아이를 보며 느꼈던 공포가 선명하다. 뜨겁고 차갑고 힘이 없는 그 작은 몸이 쌕쌕거리며 내 품에서 들썩일 때,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 작은 생명이 나로부터 떠나가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 말이다. 아이의 열이 내려갈 때까지 손을 꼭 잡고 간절히 기도했던 밤이 얼마나 길고 무겁게 느껴졌던지. 그때의 나는 그저 아이가 건강하기만 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아이는 처음 어린이집에 가고, 처음 솜사탕을 맛보았다. 순간순간의 "처음"들은 너무 빨리 지나갔고, 나는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연이은 야근으로 인해, 아이가 자는 모습만을 보는 나날들이 많았다. 아이가 바뀌어 가는 모습을 따라잡지 못한 채, 그 동안 내가 알던 캔버스는 지워지고 새로운 색깔로 가득 찬 캔버스가 나타난다.
눈을 감았다 뜨면 아이는 변해 있었다. 그렇게 빠른 변화 속에서 나는 매번 서툴렀다. 매 순간의 선택들이 옳았는지, 아이를 더 잘 돌볼 방법이 있었는지 끊임없이 자문했다. 아직 어린 아이에게 화를 냈던 순간들도 떠오른다. 간식 하나 때문에 굳이 아이를 울릴 필요가 있었을까? 그 장난감 사줄 걸 그랬나? 조금 더 안아줄 걸 그랬나? 억지로 밥 다 먹이지 말 걸 그랬나? 매 순간 분기점에서 선택을 한 내가 옳은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마음 한구석을 스쳤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걸까. 아이가 너무 빨리 자란다.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다. 아이가 자라는 그 모든 순간을 함께 하고 싶다. 그저 욕심인 걸 알면서도 그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뭉개지는 발음은 곧 뚜렷해질 것이다. 총총 걷던 발걸음은 터벅이는 소리로 바뀔 것이다. "아빠", "엄마"로 가득 찼던 세상은 곧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것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 상실감을 이루 말할 수 있을까. 아이가 지금처럼 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될 날이 머지않아 다가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그 또한 아이가 자라는 과정의 일부일 것이고, 내가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