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랜만에 아내와 여주에 있는 아웃렛에 다녀왔습니다. 쇼핑을 좋아하는 저는 종종 아내와 함께 파주로, 여주로, 김포로 바람 쐴 겸 아울렛 나들이를 다녀옵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좋아하던 브랜드를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브랜드는 고향 근처 아울렛에 입점해 있을까?” 없을 겁니다. 지방에 위치한 아울렛은 아무래도 접근성이 높은 가격대의 대중적인 브랜드가 대다수입니다. 각 지역의 백화점마다 1층에 입점해 있는 브랜드가 다른 것과 같은 이유죠. 수년 전 들렀던 부여 아울렛은 제가 좋아하는 폴로는 찾을 수 없었고 무난 무난한 캐주얼 브랜드와 아웃도어, 스포츠 브랜드들 뿐이었습니다.
요즘 뽕얘기가 많은데 뽕은 역시 랄뽕이죠
서울을 탈출하게 되면 이렇게 당연히 누리던 것들이 아쉬워질 겁니다. 어떤 것들이 아쉬워질까 하고 아내와 얘기를 나눴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석촌호수와 송리단길, 올림픽 공원입니다. 이 세 곳은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들입니다. 식사를 마치면 소화를 시킬 겸 산책을 하는데 저 세 곳의 중간에 사는 우리 부부는 한 곳을 골라 산책을 나섭니다. 특히 봄에 석촌호수와 올림픽 공원을 걷다 보면 이래서 잠실 집값이 비싸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남들이 맘먹고 찾는 송리단길의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석촌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오는 게 지금은 우리의 '일상'이지만 반년 후엔 그땐 그랬지 하며 사진을 보고 추억할 겁니다.
올해는 월드타워 불꽃축제도 있었어요!
아내가 직원 할인을 꼭 쓰라고 하네요. 아내의 회사(백화점)에선 종종 다양한 직원 할인 행사를 합니다. 의류, 화장품 등등 종류도 많습니다. 금액은 크지 않아도 마트에서 할인받는 것도 쏠쏠합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에는 패션 계열사가 있어 의류 직원 할인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앞으로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브랜드 들이지만요. 생각해보니 휴가 때 콘도나 호텔 할인도 유용하게 이용했었네요.
종종 들르던 이곳저곳의 전시회도 아쉬울 것 같습니다. 미술엔 문외한이지만 이런저런 전시회에 종종 가는 편이었습니다. 저는 철저하게 텍스트 위주의 인간이기도 하고, 관심사도 온통 문학, 경제, 투자 쪽이기 때문에 예술 쪽으로는 뇌를 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전시회에 가서 멍하니 작품들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뭔가 쓰지 않던 근육을 쓰는 느낌이랄까요. 어떤 전시들은 몇 해가 지나도 잊히지 않는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잡기도 합니다. 과천 미술관에서 봤던 정기용 건축전이나 대림미술관에서 했던 ECM 전시회 같은 것들이 저한텐 그런 전시였습니다. 서울에선 일 년 중 언제든 관심 있는 전시를 골라볼 수 있지만 지방은 여전히 그런 류의 문화생활이 힘든 게 현실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뇌를 자극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서재페
여러 음악 페스티벌과 콘서트도 그립겠네요. 아내와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매년 서울재즈페스티벌을 찾았습니다. 5월의 햇살 아래서 와인을 마시며,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뮤지션들의 라이브 공연을 보는 것은 제가 성인이 되고 누린 가장 호사스러운 일중 하나였습니다. 데미언 라이스, 에릭베넷, 제이미 컬럼, 로이 하그로브(!), 플라잉 로터스, 코린베일리레이, 세르지오 멘데스, 허비 행콕, 빈티지 트러블, 램지 루이스 등등. 2년 전까지의 서재페는-지금은 너무도 변해버려 발길을 끊었습니다-저에게는 정말 중요한 연례행사였습니다. 서울에 살지 않았다면 에미넴이나 제이지의 공연, 이제는 고인이 돼 버린 누자베스의 공연도 보지 못했을 겁니다. (여보. 나중에라도 칸예가 오면 그건 꼭 보내주라. 응?)
사실 제일 아쉬움이 큰 건 친구 및 지인들과의 만남과 관계입니다. 대학도, 직장생활도 서울에서 했던 저희는 대부분의 친구와 지인들이 서울에 있습니다. 저와 아내 둘 다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인들을 만나며 얻는 즐거움은 일상에서 매우 큰 부분입니다. 저는 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고향에 남아있는 그나마 친구들을 종종 보겠지만 아내는 그곳에 지인들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사실 가장 걱정되고 미안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단순 사교 관계 이외에도 저는 사실 저보다 잘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견해나 논리를 듣는 걸 좋아합니다. 영감과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저의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는 직장 내 다른 계열사와의 프로젝트나 교육 또는 이런저런 소모임이나 지인들의 소개로 그런 사람들을 만나왔는데 아무래도 서울을 떠나면 그런 관계도 좀 줄어들겠죠.
아내가 이러면 어쩌죠?
모든 것이 가장 빠르고, 가장 세련되고, 가장 최첨단인 서울과 지방 소도시의 간극은 생각보다 큽니다. 이사해서 살아가다 보면 아쉬운 것들이 계속 보일 테고 가끔은 그런 아쉬움들이 너무 커 ‘괜히 내려왔나’하고 후회하는 순간도 찾아올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 언제 그랬냐는 적응해서 '서울 살이' 생각이 전혀 나지 않을 만큼 지방생활이 즐거워 질 수도 있겠죠?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요.
지방에 살게 됐다고 아쉬운 것들만 있진 않습니다. 시간이 되면 지방 생활에서 기대되는 것들도 한번 적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