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세대들 사이에서 익숙하게 듣던 주절거림이 있었다. 그게 내 생각인양 내재화되어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고 인내하려 했다. 어른들과 또는 남성들과 다른 생각을 하면 스스로 죄인인양 자책도 했다.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어느 날, 권위에 맞서면서도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하던 사춘기의 또 다른 주절거림도 있었다. 이 주절거림은 독백 같고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
책 <어떻게 지내요>에는 그렇게 관습적인 사람들과 약자들의 이야기가 모여들었다가 흩어진다. 그래서일까. 시그리드누네즈의 문장은 시니컬하고, 독백처럼 주절거리는 듯한 태도로 사유의 경계를 넘나들며 단어의 파편을 쏟아낸다. 완결되지 않은 문장과 단어들의 조합이 마치 불완전한 우리의 삶과도 같다고 말하는 듯하다.
소설은 크게 지구의 종말이라는 거시적인 죽음과 한 개인의 죽음이 두 축을 이룬다.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교수는 인류의 안위를 제일로 걱정한다. 거시적이지만 사실 그는 대상화된 지구밖에 있는 사람이다. 미시적으로, 말기암 환자 친구의 종말을 깊숙이 이해하지 못했던 화자는 곁에서 지내는 동안 변화가 일어난다. 가장 깊숙한 삶의 결에서 고통을 함께 한다. 이로써 화자는 타자화 되는 삶의 지점 어디 쯤 엔가에 놓여있게 된다. 우리는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내 삶의 깊숙한 곳에 도달하지 못하면 공감하지 못하는 거다. 말로 아무리 고통을 이야기해도 직접 함께 겪어내지 못하면 그것은 결국 또 다른 주절거림으로 끝나버린다.
지난 2년간 인류를 송두리째 옴짝달싹 못하게 했던 펜데믹을 경험하면서도 여전히 방역만을 외치는 시스템이 지구의 안위를 걱정하는 권위적인 교수의 강연 같다. 반면, 관계 속에서 고통을 대면하고 어떻게 지내는가를 사유하는 화자의 주절거림은 바로 우리들의 현재 상황이다. 문학은 정의를 외치는 사도의 역할이 아니라 사유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어떻게 지내느냐는 물음은 결국 독자를 사유하게 하고 변화로 물드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들린다. 사유하고 고통을 나누는 동안에도 삶은 지속된다. 이 모든 부조리가 삶인거라고. 화자의 독백처럼, 나도 주절거림 같은 에세이를 쓴다. “어떻게 지내요?”
추신/ 오늘 읽은 詩
당신이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고,
자신의 가슴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꿈을 간직하고 있는가 나는 알고 싶다.
당신이 몇 살인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다만 당신이 사랑을 위해
진정으로 살아 있기 위해
주위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알고 싶다.
어떤 행성 주위를 당신이 돌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슬픔의 중심에 가닿은 적이 있는가
삶으로부터 배반당한 경험이 있는가
그래서 잔뜩 움츠러든 적이 있는가
또한 앞으로 받을 더 많은 상처 때문에
마음을 닫은 적이 있는가 알고 싶다.
나의 것이든 당신 자신의 것이든
당신이 기쁨과 함께할 수 있는가 나는 알고 싶다.
미친 듯이 춤출 수 있고, 그 환희로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까지 채울 수 있는가
당신 자신이나 나에게 조심하라고, 현실적이 되라고,
인간의 품위를 잃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 않고서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당신의 이야기가 진실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진실할 수 있는가
배신했다는 주위의 비난을 견디더라도
자신의 영혼을 배신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알고 싶다.
어떤 것이 예쁘지 않더라도 당신이
그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가
그것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더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가 나는 알고 싶다.
당신이 누구를 알고 있고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당신이 슬픔과 절망의 밤을 지샌 뒤
지치고 뼛속까지 멍든 밤이 지난 뒤
자리를 떨치고 일어날 수 있는가 알고 싶다.
나와 함께 불길의 한가운데 서 있어도
위축되지 않을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내면으로부터 무엇이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자기 자신과 홀로 있을 수 있는가
고독한 순간에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을
진정으로 좋아할 수 있는가 알고 싶다
***기억을 재생하다가 허물어지는 성처럼 흩어졌다. 잔해가 많아서 수습이 어렵다. 한타임 수업을 더 해야 하는데, 나는 지금 허공에 가 있다..... 2022년 9월 14일